인물세계

예수(Jesus of Nazareth)

마 음 2016. 12. 24. 14:11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나사렛 예수(Jesus of Nazareth)

출생 : BC 7년경. 사망 : AD 26년경.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기원전 7년경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인 나사렛 근처를 돌며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의 출신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를 평등한 하느님의 자손으로 대했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각국으로 퍼져나가며 그리스도교를 전 유럽에 전파했다.


예수는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를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여기며, 이슬람교에서는 그를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 존경한다. 힌두교에서도 예수가 크리슈나의 사랑을 받은 아들로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으며,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에게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예수에 대한 정확한 사료는 남아 있지 않다. 몇 가지 비그리스도교계 사료로 남아 있는 것은 서기 110년에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가 쓴 《연대기(Annalia)》 15권 44장 2절에서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 폰티우스 필라투스 총독에게 처형당했다는 기록 정도이다. 타키투스는 서기 64년 로마에 화재가 났을 때 네로 황제가 그 책임을 그리스도교도에게 돌려 그들을 박해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비티니아의 총독 플리니우스가 112년경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도 그리스도교도들이 그를 신처럼 여겨 찬양했다고 나와 있다.


예수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 어 '이에수스(Inбuç)'의 라틴 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여호수와(Jehoschua)를 그리스 어로 옮긴 것이다. 여호수와의 어원은 접두어 Je-(히브리 어 JHVH/YHWH, 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 어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를 덧붙여 이루어진 말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그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사렛 예수」라고 부른다.


또한 '그리스도(Christ)'라는 낱말은 고대 그리스 어의 '기름을 부은'이라는 뜻의 '크리스토스(khristos)'라는 말을 라틴 어로 표기한 것이다.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름은 유대 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높은 사람, 즉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메시아에게 붙이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자를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창시자임에도 예수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대부분은 후대에 쓰여진 복음서에 나와 있는 것이지만 신빙성이 떨어지는 면도 많다. 역사적 사실로 보이는 부분을 추리자면 예수의 아버지는 나사렛의 요셉이며, 어머니는 마리아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예수에게 네 명의 형제와 몇 명의 누이가 있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예수의 출생년도 역시 분명치 않다. 《마태오 복음서》 1, 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초기 시절이 헤롯 1세 때와 정권의 교체기(기원전 4년)로 나오며, 《루카 복음서》 2장에서는 예수의 탄생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서기 6년) 있었던 유대의 첫 번째 인구조사와 연결시킨다. 또한 기원전 8년경에 행해진 인구조사에 대한 역사적 증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많은 자료가 탄생 연도를 기원전 7, 6년으로 추정한다. 예수의 탄생 장소가 베들레헴이라는 전승은 다윗의 후손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구약성서》 개념에 근거한 것이다. 인구조사 때문에 예수의 가족은 고향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을 떠나 팔레스타인의 남쪽 지방인 유대의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갔다. 요셉과 성모 마리아가 다윗 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 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호구 등록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은 동정녀 마리아 잉태설과 상반된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는 동정녀 잉태설은 실제로 극히 일부의 복음서에만 나온다.


세례 요한의 등장과 행동, 그에게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복음서의 내용은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역사적 근거이다.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세례 요한은 선구자 혹은 개척자이거나 《요한 복음서》에서처럼 예수의 증인이다. 세례 요한의 투옥 이후 예수는 갈릴리 지방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가 사역한 실제 영역은 겐네사렛 호수의 북서연안 지역(베싸이다, 고라신, 가파르나움)이었다. 예수는 당시의 다른 선지자들처럼 백성들을 광야로 부르지 않고 그들의 거주지를 직접 찾아가 일상적인 생활에 참여했다. 그는 유랑하는 설교자로서 민중들 가운데서 일했고, 카리스마적인 기적을 행했으나 요한처럼 세례를 베풀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특별한 회당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가르침을 베풀었다. 또한 성인 남성들뿐만 아니라 당시 제대로 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여성, 어린이, 심지어 창녀나 장애인까지 개의치 않고 받아들였다. 그는 하느님의 실재와 그의 뜻의 정당성을 어려운 말이 아니라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시했고, 인습적이고 종교적인 관점 없이 청중들을 쉽게 이해시켰다.


그 유명한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비유는 다음과 같다.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고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나왔지만 해가 뜨자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버렸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30배가 된 것도 있고 60배가 된 것도 있고 100배가 된 것도 있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지 그렇지 않을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으며, 받아들인 사람은 자신의 삶 속에서 그 결실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마태오 복음서》에는 예수가 가르친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근본 원리는 바로 이러한 태도를 기초로 하고 있다. 또한 예수는 경건한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 존경받는 자와 버려진 자, 건강한 자와 병든 자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를 평등한 하느님의 자식, 자신의 형제자매로 여겼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독특한 행동이었다. 예수는 부(富)를 쌓는 것을 장려하지 않았으며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라고 말하여 참된 부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음을 강조했다.


공관 복음서들의 일치된 증언에 따르면, 예수는 갈릴리에서 운동을 일으켰고, -물론 비난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그는 출신과 교육 수준에 관계없이 제자를 선택했다. 그중에는 어부(안드레아,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리(마태오), 열심당원(시몬과 가리옷 유다), 농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의 제자 훈련은 랍비들처럼 '훈련'과 함께 끝나는 과도적인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 중 누구도 오랜 기간 공부한 끝에 '스승'의 지위로 올라가지 않는다. 제자들은 어디까지나 제자들일 뿐이며, 예수의 뜻을 전하는 사도로서만 그 역할이 한정되어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유대의 통치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느님의 후손으로 한데 모으려 하는 자신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러한 충돌을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로마의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정치적 반란자로 처형당했다. 그가 죽은 날은 서기 26년에서 32년 사이의 니산 월(Nissan, 유대력에서 봄이 시작되는 달) 14일, 즉 4월 14일로 추정된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교도들 사이에서는 그가 죽은 후 부활하여 40일간 지상을 걸어 다녔고 그 후 하늘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초기 그리스도교도들은 부활한 예수를 믿음으로써 한데 연합할 수 있었다. 그 후 서기 70년에서 80년에 이르러 예수의 제자들이 쓴 복음서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예수의 믿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이스라엘 외의 지역에서 전도를 시작하며 그리스도교는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중세에 들어서며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죄와 이에 대한 속죄를 연구하는 데 중심을 두게 되었다. 신학자들은 예수의 죽음이 인류를 해방시키는 대가로 악마에게 지불된 것이며, 이로 인해 인류가 영원성을 얻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학과 관련된 결론 없는 논쟁으로 인해 서방 교회는 점차 고인 물처럼 썩기 시작했고, 신부들 역시 타락하게 되었다. 결국 중세 시대 후반 유럽 각국에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그리스도교는 여러 개의 종파로 갈라지게 된다.


현재는 수많은 종파들이 각각의 교회를 이루고 있지만, 이들이 믿는 기본적인 교리는 오래전 예수가 주장했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이다. (세계를 움직인 100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