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돌 삼일절과 안중근 의사


삼일절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8월 22일 '병합'조약을 강요하여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난 후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시행하며, 한민족의 모든 기본권리를 박탈했으며 교육, 종교 등의 모든 분야에 억압과 탄압을 당했습니다. 많은 경제적인 것들이 수탈당했습니다. 이에 울분을 참지 못한 우리 민족이 분연히 일어나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항일운동가이며 의병장, 정치사상가이다.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고려조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26대손이다. 우덕순, 조도선 등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 만주의 각 역 근처에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 전 한국통감 등의 하차 시 총살을 준비하였으며, 하얼빈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森泰二郞), 만철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체포 후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자 특파독립대장이라고 밝혔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아버지 안태훈이 동학군을 정벌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고, 구한 말에는 학교 설립과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하였으며 한때 복권 사업과 비슷한 채표회사(彩票會社)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제2차 한일 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사상적 측면으로는 동양평화론자이기도 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로 말하고 있지만 그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진정한 영웅이고 애국지사이다.
삼가 머리숙여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뜻을 영원히 기립니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독립 만세!
대한국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