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들에도 비는 오는가
우리 민족의 서정적 시인 이상화 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가 생각나는 아침이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된 지가 언제인데 이른 아침부터 뜬금없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면서 헛소리를 하는지 궁금해하는 블로거 이웃들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민족시인 이상화 님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의 광복이 언제쯤이나 올 것인가를 애통해 하는 마음이었지만, 파란마음은 지금 자신이 처한 애타는 심정을 말로 표현하자니 이렇게 이상화 님의 명작을 인용하게 되었다.
지금 이곳 김천 캠프에는 아침 06시경부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미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제주도를 제외한 경상북도를 포함하여 전국이 오랜 가뭄으로 각종 농작물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여 수확량의 감소가 예상되는 현실이다. 파란마음은 오늘도 날이 밝아지는 05시에 일어나 커다란 주전자를 들고 밭으로 나가 밭 근처 작은 계곡의 물웅덩이에 조금 남아있는 물을 주전자로 길어다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에 조금씩 물을 먹여주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격을 하였는지 모른다.
방송 기상예보에서는 제주도와 남쪽 지역에 약간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하는 소식은 들었는데 이곳 김천 지역에도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서 이곳에도 적으나마 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면서도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질 뿐 옷이 젖을 정도로 내리지 않아 밭과 100여m 떨어진 계곡의 물웅덩이를 열한번 오르내리면서 물을 길어다 농작물(고구마밭)에 뿌려주고 나니 허기도 지고 지난번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하면서 굵은모래(마사토)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후유증으로 꼬리뼈 부분이 아직도 아파서 다른 작물에는 미안하지만, 하늘에서 비가 많이 내려주기를 바라면서 캠프로 돌아왔는데 비가 그치지는 않고 한두 방울씩 계속하여 떨어지고는 있는 모습이다.
그렇게 지금 현재 시각 열한 시(오전 11시)가 되도록 비가 내렸는데 바람에 날리는 먼지 정도는 적신듯하나 감나무 아래에는 먼지가 젖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다섯 시간이 넘는 동안에 내린 비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제 그나마도 빗방울이 멎었다. 메마른 들에는 언제쯤 흡족한 비가 내릴 것인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