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기적 같은 일은 없었네...

마 음 2015. 11. 25. 15:35

 

 

캠프 앞동산. 왼쪽에 구름에 덮여 보이지는 않으나 백두대간 난함산 정상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능선을 나는 앞동산이라 부른다. 가을철 간혹 주민들이 꿀밤(도토리)을 주우려고 올라가는 것 이외에는 멧돼지나 고라니 같은 산짐승들의 터전이다. 삼림(森林)이 울창해서 산짐승들이 살기에 좋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도토리 말고는 버섯이나 고사리 같은 것은 별로 없다. 깊은 산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겨우살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        

 

 

 

    

 

캠프 뒷동산. 백두대간 난함산 정상에서 시작되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앞동산과 마주하고 있는 긴 능선으로 나는 뒷동산이라 부른다. 소나무도 있지만, 참나무 종류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을철이면 꿀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며칠 전에 올라보니 참나무 간벌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잘라놓은 참나무를 끌고 내려오면 겨울철 좋은 땔감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앞동산이나 뒷동산 모두 캠프에서 1시간 정도만 오르면 능선에 다다르게 되는데 앞동산은 주로 바라보는 것으로 하고 뒷동산에 자주 오른다.

 

 

 

   

 

이곳 캠프 옆에 오랫동안 놀고 있는 밭이 있어서 늙은호박(청둥호박)을 얻기 위해서 지난봄에 호박구덩이 88개를 팠었다고 이곳 인터넷 일기장(파란마음 블로그)에 수차례 언급하였었다. 극심한 가뭄에도 호박 모종을 살리기 위해서 계곡의 옹달샘에서 물을 길어다 주면서까지 애지중지 가꾸는 정성의 보람으로 커다란 호박이 달리고 누렇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던 것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늙어가던 호박들이 추풍령이 가까워서 그랬는지 추풍낙엽처럼 모두 줄기에서 떨어지는 현상에 떨어진 호박을 갈라보니 호박 안에는 구더기가 바글바글.

 

원인을 알아보니 쉬파리가 호박꽃에 들어가 꿀을 따먹으면서 꽃 안에 알을 낳아놓는데 알이 부화하여 어린 호박 속으로 파고 들어가 호박을 먹으면서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 여파로 호박이 줄기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늙은호박(청둥호박)을 얻기 위해서 작은 애호박을 따지도 않고 모두 키웠는데 어린 애호박인 상태에서도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기후와 환경적인 영향으로 보았는데 기후보다는 환경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주변에 한우를 사육하는 농장이 많아 쉬파리떼가 많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크고 노랗게 된 호박도 40여 개가 되었는데 모두 떨어지고 이것을 포함하여 두 개가 호박 줄기에서 떨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어서 이것들은 쉬파리의 공격을 받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지난가을 수확하여 창고 그늘에 놓아두고 있었는데 한 게는 벌써 썩어서 버렸고 나머지 이것 한 개는 온전한 것 같아 지금껏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켜보면서도 저것이 정말로 온전할까? 저것도 마찬가지로 호박 속에는 구더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온전한 호박이기를 믿고 싶었다. 그래야 다가오는 동지에 호박 팥죽이라도 한번 쑤어먹을 수 있겠기에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참 이상하다.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에 저것을 보면서 궁금증이 동해서 견딜 수가 없다. 동지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고 지금 당장 잘라서 그놈의 속을 알아보고 싶었다. 당장 호박을 잘라서 확인해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주방으로 들어가 식도를 들고나와 호박을 반으로 가르면서 칼날을 살며시 젖혀서 벌어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까맣게 썩어있는 모습이 보인다. 완전히 두 동강으로 자를 필요도 없었다. 잘라보아야 혐오스러운 구더기나 보일테니까. 그대로 캠프 주변의 낙엽을 긁어모아 쌓아놓은 두엄구덩이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혹시나 하던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호박구덩이 88개를 파고 애써 가꾸었지만 늙은호박(청둥호박)은 단 한 개도 얻지 못한 농부흉내 내기의 결산보고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