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서오릉(西五陵)
종목:사적 제198호
분류: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지정일:1971.05.26
소재지:경기 고양시 덕앙구 용두동 산30-1
설명:
서오릉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 지역이 무덤지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세조 3년(1457)에 세자 장(덕종)이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이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서오릉은 덕종과 소혜왕후의 경릉,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무덤인 창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숙종의 원비인 인경왕후의 무덤인 익릉, 21대 영조와 정성왕후의 무덤인 홍릉을 말한다.
서오릉은 동구릉 다음으로 큰 조선왕조 왕실의 가족무덤를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품격에 따라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 왕의 생모·왕세자·빈의 무덤은 ‘원’,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로 구분하여 불렀다. 서오릉에는 5개의 능 이외에도 조선왕조 최초의 ‘원’으로 명종의 첫째 아들인 순회세자의 무덤 순창원과 숙종의 후궁으로 많은 역사적 일화를 남긴 희빈 장씨의 무덤인 대빈묘,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暎嬪) 이씨(李氏)의 묘소인 수경원이 있다.
가 있다.
제1릉-경릉
경릉(敬陵)은 덕종(德宗,추존)과 왕비 소헤왕후(昭惠王后,추존) 한씨(韓氏)의 릉이다. 덕종은 조선제7대 임금인 세조(世祖)의 맏아들로 태어나 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세자가 되었으나 2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고(1457년) 뒤에 그의 아들 성종(成宗)이 왕위에 오르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 한씨는 서원부원군(西原府院君) 한확(韓確)의 딸로 세조 즉위년(1455년)에 세자빈이되어 월산대군(月山大君)과 성종 형제를 낳았으며 성종이 왕위에 오른뒤 왕비로 추존하면서 소혜왕후라 부르게되었다. 연산군(燕山君) 10년(1504년)에 68세로 돌아가셨다.
특히 불경에 조예가 깊었으며 부녀자의 예의범절에 관하여 쓴 내훈(內訓)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제2릉-익릉
익릉(翼陵)은조선 제19대 숙종(肅宗)의 원비(元妃)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金氏)(1661-1680)의 릉이다.
인경왕후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김만기(金萬基)의 딸로 현종(顯宗)12년(1671)에 세자빈이 되었으며 숙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1674)왕비가 되었다.숙종6년(1680)에 희궁 하상전에서 20세에 돌아가셨다.
숙종의 비(妃) 인경왕후 김씨(仁敬王后金氏; 1661-1680)의 익릉은 숙종이 왕릉을 간소화하라는 명(命)을 내리기 이전에 조성된 능이었기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오릉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봉분(封墳)은 병풍석(屛風石)을 생략하고 난간석(欄干石)만으로 호위하고, 석물(石物)들의 크기도 명릉(明陵)에 비해 크고 장명등(長明燈) 역시 팔각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숙종과의 슬하에 두 공주(公主)를 두었으나 모두 일찍 죽었고, 왕비 역시 20세의 나이에 천연두(天然痘) 증세로 요절(夭折)하고 맙니다.)
제3릉-명릉
왼쪽에 인원왕후 중앙에 숙종과 인현왕후의 릉.
인원왕후의 릉
숙종과 인현왕후의 릉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숙종(肅宗)과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 그리고 제2계비 인원왕후(仁元王后) 김씨(金氏)의 릉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나란히 자리한 쌍분(雙墳)으로 쓰고 인원왕후의 릉은 옆에 따로 있어 같은 언덕에 배치되어 있다.
숙종은 왕비를 세 번 맞아 들였는데 원비인 인경왕후(仁敬王后) 김씨의 릉인 익릉은 서오릉안에 따로 있다.
숙종은 조선 제18대 현종(顯宗)의 아들로 태어나 현종8년(1667)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674년에 왕위에 올라 재위 46년간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예의에 관한 선비들간의 논쟁과 장희빈을 중심으로 한때 인현왕후 민씨를 몰아낸 사건을 겪었으나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백두산에 정계비를 세웠다. 재위 46년(1720)에 60세로 돌아가셨다.
인현왕후 민씨(1667~1701)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민유중(閔維重)의 딸로 숙종7년(1681)에 숙종의 계비가 되었다. 숙종15년(1689)에 왕자 윤(昀, 뒤의 경종)의 세자 책봉 문제로 장희빈이 모함하여 폐위당하였다, 후에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복위된 뒤 35세로 돌아가셨다.
인원왕후 김씨(1687~1757)는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딸로 숙종28년(1702)에 왕비가 되었고 영조(영조)33년(1757)에 71세로 돌아가셨다.
제4릉-홍릉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왕비 정성왕후(貞聖王后) 서씨(徐氏 1692~1757)의 릉이다. 왕후는 달성부원군(達成府院君) 서종제(徐宗焍)의 딸로 경종(景宗) 원년(元年)(1721)세제빈(世弟嬪)이 되었고 1724년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제5릉-창릉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 ?~1498)의 릉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이들로 태어나(1450) 세조2년(1457)에 세자가 되었고 세조13년(1468)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지 13개월만에 20세로 경복궁에서 돌아가셨다(1469)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의 딸로 예종 즉위년(1468)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연산군(燕山君)4년(1498)에 돌아가셨다.
순창원
순창원(順昌園)은
조선 제13대 명종(明宗)의 맏아들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와 공회빈(恭懷嬪) 윤씨(尹氏)의 묘소이다. 순회세자는 명종 12년(1557)에 세자가 되었으나 13세에 돌아가셨다. 공회빈 윤씨는 윤옥(尹玉)의 딸로 선조(宣祖)25년(1592) 3월3일 돌아가셨다.
대빈묘
대빈묘(大嬪墓)는
조선 제19대 숙종(肅宗)의 후궁인 희빈(禧嬪)장씨(張氏 ?~1701)의 묘소이다. 숙종은 오랫동안 아들이 없었는데 숙종14년(1688)에 궁녀 장소의(張昭儀)에게서 왕자 윤(昀, 뒤의 경종)을 얻었다. 이듬해 윤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소의에게 희빈이라는 품계를 내렸다. 그 후 인현왕후(仁顯王后) 민씨(閔氏)를 왕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하였으나 숙종은 곧 이를 후회하고 인현왕후를 복위하고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다. 대빈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에 있었는데 1969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수경원
수경원(綏慶園)은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후궁(後宮)인 영빈(暎嬪) 이씨(李氏)의 묘소이다. 영빈이씨는 영조11년(1735)에 사도세자(思悼世子, 莊祖-추존)를 낳았으며 영조40년(1764)에 69세로 돌아가셨다. 수경원은 원래 서대문구 신촌에 있었으나 1968년 6월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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