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275

경복궁 향원정과 취향교의 겨울

인왕산과 낙산을 좌청룡 우백호로 삼아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북악산(백악산) 아래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조선의 정궁 경복궁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향원정은 2층 정자로 고종이 건청궁(乾淸宮)에 기거하던 1867년 경회루 서북쪽에 연못을 파고 그 중앙에 지은 정자이다. 건청궁과 향원정 사이에 다리를 놓아 취향교(醉香橋)라 했는데, 이 다리는 6·25 한국전쟁 때 파괴되고 1953년 남쪽에 새로 다리를 놓았다가 2017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2년 6개월여에 걸쳐 일제 강점기 후 변형되어 원래 자리가 아닌 곳에 설치된 경복궁 향원지의 나무다리 취향교(醉香橋)를 원래 자리에 복원하고 일반에 다시 공개한 모습이다. 정자는 정육각형으로 장대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육각형의 초석을 놓고 그 위에..

역사유적 2024.12.11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경회루는 경복궁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 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외국인 관광객들이 제일 많이 찾는 서울의 관광지로 경복궁과 창덕궁 청와대 등을 ..

역사유적 2024.12.10

와우산 공민왕 사당 & 절두산 순교 성지 & 한강 서울함

와우산 아래 공민왕 사당. 절두산 순교 성지 1. 양화진(楊花津). 잠두봉(蠶頭峰)의 유래와 역사 양화진은 순수한 우리말로 풀이하면 버드나무 꽃이 핀 나루터란 뜻이다. 그리고 우뚝 솟은 잠두봉은 생김새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불렸던 이름이다. 양화나루 잠두봉은 15세기 태종 때부터 17세기 인조 때까지 주로 명나라 사신들을 접대하던 곳이었을 분만 아니라 국내의 고관 사대부들이 별장을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던 이름난 명승지였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서울에서 양천 김포를 거쳐 강화에 이르는 중요한 통로이자 삼남지방의 조운선(漕運船)과 한강 유역의 각종 어선들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양화나루는 도성으로 들어오는 사람과 물품들을 조사하고 도적(盜賊)들을 단속하던 장소가 되었으며, 구한말(舊韓..

역사유적 2024.08.10

한강공원 서울함 & 잠수함

특별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옆 월드컵천(불광천)의 석축을 이용한 호안공사가 깔끔하게 마무리공사를 마친듯하다.▲ 이처럼 석축호안으로 말끔한 모습도 좋고 아래처럼 수풀이 우거진 자연스러운 하천의 모습도 보기 좋다. 그래야 하천에 살고 있는 동물과 물고기들이 산란도 하고 시원한 그늘숲에서 휴식도 취하면서 지내기 좋을 터이니까.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  월드컵천(불광천)의 서대문구 관할지역 「해 담는 다리」 주변 풍경.   한강의 성산대교. 성산대교는 현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인듯하다. 아직 페인트 도색작업이 진행 중인 모습이다. 장마찰을 맞이하여 보수작업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서울함(FFK-952) 등급 : 울산급 호위함. 배수량 : 1,900t 전장 : 102m 전폭 : 11.5m 높이..

역사유적 2024.06.24

경주 황룡사지 9층 목탑 복원인줄 알았는데

경주여행 중에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해안을 탐방하고 시내버스 편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멀리 이 탑이 보였었다. 내심 신라시대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다는 것과 탑이 고려. 몽골 전쟁 당시에 불타 없어졌다는 사실은 짧은 가방끈의 신세라고 해도 알고는 있었는데 이 거대한 탑을 보면서 황룡사 9층목탑을 복원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다음날 여행지로 이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외형은 황룡사 9층목탑을 본떠 지은 중도타워(황룡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천시 직지사 사명대사공원에도 평화의 탑이라는 이와 비슷한 목조탑이 세워져 있어 이것도 경주국립공원관광단지에 있으니 황룡사 9층목탑을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외형은 황룡사 9층목탑이 맞고 내부는 현대건축방법을 사용..

역사유적 2024.06.15

경주 동궁과 월지(안압지) 풍경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태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 임해전(臨海殿)은 군신들이 연회나 회의를 하거나 귀빈을 접대하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74년(문무왕 14)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안압지가 건립된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뒤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79년에 궁궐을 매우 화려하게 고쳤다고 하였고, 804년(애장왕 5), 847년(문성왕 9), 867년(경문왕 7)에는 임해전을 중수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697년(효소왕 6) 9월과 769년(혜공왕 5) 3월, 860년(헌안왕 4) 9월, 881년(헌강왕 7) 3월에는 군신들이 연회를 가졌다고 하였으며, 931년에는 신라의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초청하여 주연(酒..

역사유적 2024.06.12

경주 신라문무대왕릉(문무대왕암) 앞에서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에 떠있는 작은 바위섬이 신라문무대왕릉이라고 한다.    문무대왕릉 알림 안내판. (현수막과 빗자루가 방치되어 있어 볼품 사납다.)  이곳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왕을 장사지낸곳이다.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손잡고 백재를 정벌한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21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국가를 완성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라고 유언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바다의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내고 그 바위..

역사유적 2024.06.12

경주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경주 불국사 대웅전대웅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불국토를 표현하는 일곽의 중심을 이룬다. 현존하는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이나,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대웅전 안의 중앙 정면에는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석가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竭羅菩薩)이 협시(脇侍)하고 있으며, 다시 그 좌우에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두 제자상이 모셔져 있다.(내부 사진촬영금지)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의 다보탑▲.  삼층석탑인 석가탑과 다보탑은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이다.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 탑은 영원한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화신불인 석가..

역사유적 2024.06.12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

경주국립공원 토함산(해발고도 745m) 정상에서 경주국립공원 토함산 성화채화대에서 경주 토함산 석굴암 일주문. 토함산 중턱 양지바른 숲 속에 커다란 무덤(릉)처럼 보이는 곳(석굴)의 전각에 자리 잡고 앉아 천년신라의 미소를 보여주시는 석굴암 본존불 석가여래상이 있어 알현하려고 올라간다. 석굴암 입구. 석굴암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것은 합법적으로 사진을 촬영하였다. 경주여행을 차분하게 하게 되면 얻게 되는 특권이다. 하하하. 경주여행 2일 차 아침 일찍 불국사 앞에서 토함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면서 석굴암의 입장시간(09시 00분)이 되어서 석굴암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석굴암 내부의 석가여래불상의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모습을 보면서 불교신자도 아니고 비록 돌을 조각하여 만든 하나의 형상에 ..

역사유적 2024.06.12

경주 첨성대 & 천마총

첨성대瞻星臺 신라의 첨성대는 경주에 실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삼국유사≫·≪고려사≫지리지·≪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증보문헌비고≫ 등에 기재되어 있다. 선덕여왕 때에 축조된 것으로 상방하원(上方下圓: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둥근 모양)이며, 높이는 19척5촌, 위의 원둘레가 21척6촌, 아래의 원둘레가 35척7촌이며, 중간 이상이 위로 뚫려서 사람이 그 속으로 오르내리며 별을 관측하였다는 기록이 현존 실물과 일치한다. 이 첨성대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점성대(占星臺)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 있는데, 얼마 뒤에 일본에서 점성대를 쌓았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이 사실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다. 경주의 첨성대는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어 있다.   첨성대▲ 천마총▼  천마총은 신라의 대표적인 돌무..

역사유적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