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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산성

마 음 2008. 3. 9. 10:01

행주산성 

사적 제56호.   소재지: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내동 산26.

 

행주산성은 덕양산(해발 124.9m) 정상을 중심으로 7~8부 능선을 따라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으로 전체 둘레는 약 1km이다. 산성의 남쪽은 한강에 맞닿아 있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昌陵川이 산성을 돌아 한강으로 유입되며, 산성의 동남쪽과 남쪽일대는 경사가 매우 급하여 자연적인 요새지로서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의 내성內城과 북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에워싼 외성外城의 이중구조이며, 서울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한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성으로 밝혀졌다.

 

이 산성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니인 행주대첩(1593)의 현장으로 유명하며, 산성의 정상에는 선조 36년(1603)에 세운 대첩비가 있습니다.

 

 

행주산성은 임진왜란때 충장공 권율 도원수의 대첩지이다.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장군은 이치에서 1만 왜군을 막아내고 그 여세를 몰아 수원 독산성에 포진하여 서울을 탈환하고자 경기, 충청, 전라 3도의 총 지휘관이 되어 선조 26년(1593) 2월 11일 조방장 조경, 승장 처영이 이끄는 승군을 포한한 정병 2,300여명을 거느리고 행주산성에 진주하였다. 이때 서울에는 평안도와 황해도로부터 후퇴한 왜군 3만이 웅거해 있었고, 또 그들은 벽제관에서 명나라의 이여송군을 격파한 직후여서 사기도 왕성하였다.

2월12일 새벽에 우기다 히데이에가 이끄는 3만 왜군은 행주산성을 겹겹이 포위하고 3진으로 나누어 9차례에 걸친 맹공을 가해 왔으나, 모두 패하여 총 지휘관 우끼다와 부장 이시다 미스나리, 요시까와 히로이에가 부상을 입는 등 적은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진하였으며, 아군은 창검 등 727점을 노획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선조 35년(1602)에 그날의 대첩을 기념하여 덕양산 정상에 대첩비가 세워졌고 현종8년(1842)에는 행주 나루터에 기공사를 창건하여 권율 도원수의 영령을 모셔왔으나, 6.25전란에 소실되었다. 1963년 산성 정상에 새로이 행주대첩비가 건립되었으며 1969년~1970년에 정부에서는 행주산성 정화사업을 추진하여 권율 도원수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와 덕양정, 대첩비각과 대첩문이 건립되었다.

1979년에는 기념관 건립, 기존 건물의 보수단청, 진입로등을 정비하였다.

그 후 1986년에 궁도장 신축, 권율도원수의 동상 건립 및 주차장 확. 포장, 경내 조경 등 정화사업이 이루어 졌으며, 1992년 토성을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