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일교. 지금은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보행자 통행만 허용되는 교량이 되었습니다. 좌측에 승일교를 대신하는 한탄대교가 건설되어 있습니다.
승일교 옆에 아담한 승일정이 있는데 한탄대교가 건설되면서 신구 교량 사이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승일교
소재지:철원군 갈말읍 내대리, 동송읍 장흥리 경계
이 교량은 일제강점기 철원농업전문학교 토목과 과장이며 구주공전 출신으로 진남포제련소의 굴뚝울 설계했다는 김명여 교사가 설계하여 시공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정권하인 1948년 8월부터 장흥리 북쪽으로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다리의 절반 정도를 추진한 상태에서 6.25사변으로 중단되었으나 수복 이후 우리 정부에서는 약간 다른 특색의 공법으로 나머지 구간 공사를 마무리 하고 1958년 12월 3일 준공하면서 "승일교"라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1952년 미79공병대대 중위로 한국에 복무했던 제임스.n.페터슨씨가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자료에 의하면 일본인에 의해 공사가 시작되어 다리의 양쪽입구 15미터 2경간과 50미터 1경간만을 완료하고 50미터 1경간을 남겨둔 체 중단되었으며 미79공병대대가 1952년 4월 3일 상부로부터 아취 다리를 건설하라는 명령을 받고 1952년 4월 16일 공사를 시작하여 1952년 8월 15일 완공하였다고 한다. 1999년 8월 11일 바로 옆 한탄대교를 개설하면서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고 2002년 5월 27일 등록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승일교에 대한 가장 많은 이야깃거리는 북쪽의 절반은 김일성 주석이 건설하고 남쪽의 절반은 이승만 대통령이 건설하여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하나씩 붙여서 승일교라 하였다고 하는 말이 재미있게 전해지고 있지만, 북쪽이 먼저 다리 공사를 시작하고 6.25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중단되었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 남쪽에서 완공하게 된 다리로 남북분단의 아픔과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다리라고 하겠습니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6.25 전쟁 당시에 한탄강을 건너 북진 중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추모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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