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능선의 정상부 바위 지대. 단단한 바위로 이루어진 고분 같은 느낌이다.
기자 능선 정상부에서 향로봉 방향으로 두 번째 봉우리로 향로봉 정상부 직전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북한산 동굴이라는 커다란 동굴이 있는 곳도 이곳 북한산 향로봉 북쪽 능선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동굴탐험이 비봉의 신라진흥왕순수비를 알현하는 것보다 더욱더 어려운 지점에 있다.
비봉 직전에서 바라본 관봉과 향로봉 바위 능선 그리고 왼쪽 멀리 족두리봉.
관봉(오른쪽)과 향로봉 바위 능선. 향로봉 능선은 출입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2인 이상의 조를 이루고 안전장비를 갖추면 오르내릴 수 있다.
관봉에서 바라본 비봉(오른쪽)과 능선을 따라서 사모바위 승가봉 통천문 연화봉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왼쪽 제일 뒤의 바위봉우리는 북한산의 정상인 백운대와 주변의 만경대 용암봉 노적봉이고 그 앞으로 길게 이어진 능선은 의상 능선으로 중앙지점이 의상 능선과 비봉 능선의 종착 지점인 문수봉이다. 문수봉 오른쪽은 보현봉과 사자봉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모습이다.
비봉의 서쪽 방향. 바로 직진하여 중앙지점으로 바위벽을 따라서 오르기도 하고 우회하여 동쪽에서 오르면 좀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서쪽에서 정면으로 오르려면 단속초소를 거처야 하므로 안전장비를 갖추어야 진입이 가능하다. 잠시 우회하여 동쪽으로 올라보자.
비봉의 동쪽방향에서 올라와 대한민국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를 알현한다.
비의 측면에는 「이 비는 문화재청이 복제하여 이천육년 시월 십구일에 세우다」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신라진흥왕순수비 복제비가 처음 세워진 날짜는 2006년 10월 19일인데 저는 이틀 뒤인 10월 21일에 올라보았습니다.
복제비가 세워지기 전에는 「신라진흥왕순수비유지」라는 사각의 비석이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대한민국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 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전자료)
현재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 있는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는 원본과 똑같이 복제한 비를 발견 당시의 자리에 그대로 세운 것입니다. 처음 비를 세운 지 1500여 년의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북한산 등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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