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중에 경주시 양남면 봉길리 문무대왕릉과 주상절리해안을 탐방하고 시내버스 편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멀리 이 탑이 보였었다. 내심 신라시대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이 있었다는 것과 탑이 고려. 몽골 전쟁 당시에 불타 없어졌다는 사실은 짧은 가방끈의 신세라고 해도 알고는 있었는데 이 거대한 탑을 보면서 황룡사 9층목탑을 복원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 다음날 여행지로 이곳을 찾아가 보았는데 외형은 황룡사 9층목탑을 본떠 지은 중도타워(황룡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천시 직지사 사명대사공원에도 평화의 탑이라는 이와 비슷한 목조탑이 세워져 있어 이것도 경주국립공원관광단지에 있으니 황룡사 9층목탑을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외형은 황룡사 9층목탑이 맞고 내부는 현대건축방법을 사용한 복합문화공원으로 개인사업가가 지은 건물이었다.
중도타워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보덕동 보문관광단지에 위치한 타워로 2016년에 준공된 건축물이다. 황룡원으로 불리는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한 모습이며 지하 1층 ~ 지상 9층, 연면적 5만 4천여 m2에 높이는 68m(탑신부 꼭대기 85m)로 구성된다. 2011년에 착공하여 2016년에 완공하였다. 맞은편에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으로 형상화한 경주타워가 있다.
겉모습에서 쉽게 알 수 있듯 신라시대에 지어졌던 크고 아름다운 황룡사 9층 목탑에서 모티브를 딴 타워이다. 높이는 본탑 68m, 상륜부 약 15m로 총합 85m 정도인데, 실제 황룡사 목탑의 크기가 본탑 65m(183척), 상륜부 15m(42척) 정도로 80m 정도였기 때문에 실제와 거의 흡사하거나 더 큰 크기이다.
하필 비슷한 시기에 진짜 황룡사 9층 목탑도 복원 계획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몇몇 일반인들은 이 타워가 실제 황룡사 목탑을 복원하는 사업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세워지는 장소도 황룡사지와는 전혀 다른 보문관광단지이고 건축 주체도 동국산업 장상건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재단법인 중도에서 지은 것이다. 겉은 목재로 지어졌지만 순수한 목탑으로 복원된 것은 아니고 내부는 철골로 지었다. 지하 1층~지상 9층, 연면적 5만 4천여 m2에 높이는 68m, 내부는 일반에 공개되었는데 1층 전시공간, 2층 숙소, 3층 명상실, 4∼5층 다목적홀, 6∼7층 VIP 숙소, 8층 전망 스카이라운지, 9층 법당으로 꾸몄다.
중도타워 앞 북천의 신라교에서 바라본 보문호수 상부에 있는 경주월드 놀이시설의 일부가 보인다. 주말이 아닌데도 어린이들의 놀이시설 이용하는 왁자지껄한 소리도 들리고.
중도타워(황룡원) 맞은편의 경주엑스포 대공원의 경주타워. 멀리서 보았을때에는 커다란 건물외벽에 황룡사 9층목탑을 그려놓은 듯이 보이는데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빈 공간의 타워이고 상부 2개 층만 전시공간인 건물이다.
경주시 월성동 허허벌판 황룡사지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에 들러보았다. 황룡사 마루길을 걸어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에 들어가는데 주변이 끝없이 넓은 허허벌판처럼 보인다. 신라시대 황룡사의 규모가 얼마나 컸던가를 보여주는데 입이 딱 벌어지는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에 1/10로 축소한 황룡사 9층목탑을 복원하여 놓은 것인데도 그 규모가 큰데 실제로 황룡사 9층목탑을 현시점에서 원형대로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9층의 탑신부의 높이가 53.4m라는데 탑신 1개 층의 높이만도 6m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대식 좋은 건축장비가 있고 목재가 있다고 해도 이를 재단하고 조립할 수 있는 수십 명 고건축의 장인들이 우리나라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황룡사지 경주황룡사역사문화관 영상실에서는 컴퓨터로 황룡사와 9층목탑을 비롯한 훼손된 많은 문화재를 복원 상상도의 모습들을 볼 수는 있는데 실제로 컴퓨터가 건물을 세울 수는 없지 않겠은가. 현대식 기계를 사용해도 사람이 기계와 목재를 다뤄야 하는데 좋은 목재를 구하기도 어렵겠고 인력도 구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니 황룡사와 9층목탑 복원계획은 꿈같은 계획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우울한 경주여행의 한 순간이었다. 황룡사 9층목탑 복원 상상도 앞에서 자화상.
황룡사 9층 목탑(皇龍寺九層木塔)은 황룡사에 세워진 9층 목탑이다. 신라를 중심으로 삼국을 통일하고자 하는 그 시대의 간절한 소원이 표현으로 된 것이다.
역사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3년, 자장 율사가 당에서 귀국하여 황룡사에 탑을 세울 뜻을 선덕여왕에게 아뢰니 선덕여왕이 군신에게 의논하였는데, 신하들이 “백제에서 공장(工匠)을 청한 연후에야 바야흐로 가능할 것입니다”라고 하여 이에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서 백제에게 청하였다. 공장 아비지가 명을 받고 와서 목재와 석재를 경영하였고 이간(伊干) 김용춘이 주관하여 소장(小匠) 200명을 이끌었다. 공장은 이에 마음을 고쳐먹고 그 탑을 완성하였다. 그런 만큼 이러한 소원과 포부가 이 탑에 반영되었다.
규모가 장대무비하였는데 9층까지 높이는 탑지(塔誌) 기록 당시의 당척(唐尺)으로 따진다 하더라도 약 53.45m, 상륜부(上輪部)까지 합하면 약 66.70m나 되는 거대한 것이고, 조영(造營) 당시의 척수인 동위척(東魏尺)으로 따진다면 80m 이상으로 그보다 더 높은 초대형 건축물이었다. 또한 황룡사 9층탑을 만들어낸 의지와 역량을, 삼국 가운데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 원동력 가운데 하나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후, 황룡사 9층 목탑은 고려 때 고려-몽골 전쟁 시기에 몽골 제국 군대의 침입으로 불타버렸고 현재는 탑의 초석(礎石)만이 남아 있다. 중앙의 심초석(心礎石)에서 1964년 12월에 도난당하였던 금동사리함(金銅舍利函)이 1972년 10월 28일 국립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이 사리함의 3면에 걸쳐 탑의 조성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 경문왕(景文王) 11년(871)에 탑을 중수하면서 탑의 조성과 중수 사연을 적은 것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삼국유사의 기록과 유사하지만 당시의 확실한 명문(銘文)에 의하여 황룡사의 위관(偉觀)을 재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목탑의 모습을 음각으로 디자인한 경주타워가 2007년에 완공되었고, 이 목탑의 모습을 본따만든 중도타워가 2016년에 완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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