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창경궁 춘당지의 겨울 풍경

마 음 2024. 12. 31. 09:28

창경궁의 정전 명정전.

 

 

창경궁 춘당지에는 추워진 날씨로 얼음이 얼어있는 모습이다. 춘당지 작은 섬의 소나무도 지난 폭설피해를 입은 모습이 역력하다.

 

 

창경궁 백송.

백송은 나무껍질이 하얗고 껍질 조각이 오래되면 저절로 떨어지는 특징이 있으며 잎은 3개씩 모여 난다. 백송은 중국이 원산지인 희귀한 나무로 조선 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었다. 현재는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팔각칠층석탑.

칠층 탑신부보다 아래의 기단부가 더 높아 보인다.

 

춘당지는  창경궁의 연못이다. 연못이 두 개로, 북쪽의 작은 연못(소춘당지)과 남쪽의 큰 연못(대춘당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못 이름은 근처에 있던 춘당대에서 따왔다. 춘당대는 창덕궁 영화당 앞의 넓은 마당이다.

조선 시대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한 권역으로 묶어 사용했다. 특히 후원 권역은 더욱 그랬다. 지금은 춘당대 한가운데를 담으로 막아 인식하기 어렵지만, 춘당대의 위치는 현재의 춘당지 바로 옆이어서 연못의 이름을 거기서 따온 것이다.


남쪽 연못 자리에는 원래 권농장(勸農場)이 있었다. 권농장은 임금이 농사를 장려하고 백성들의 고단한 노동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만든 궁궐 내의 작은 농장이었다. 크고 작은 논 11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논을 일컬어 내농포(內農圃)라 한다.


북쪽 연못은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 《동궐도》를 보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1909년(융희 3년) 일제가 창경궁을 놀이공원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권농장 자리에 큰 연못을 만들고 기존에 있던 북쪽 연못과 합쳤다. 그리고 이름을 춘당지라 지었다.

춘당지는 창경원 시절 서울의 유명관광나들이 장소였다. 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도심 한복판에 있는 테마파크의 큰 연못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남춘당지 북쪽에 일본식 건물 수정(水亭)을 세웠고, 8.15 광복 이후 1965년에는 케이블카까지 설치했다. 이 밖에도 파라솔과 테이블 등 여러 관람 편의 시설을 춘당지 주변에 마련했다.


1967년에는 재일교포 사업가가 연못 안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수정궁(水亭宮)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건축가 김중업이 기존의 수정을 한국식 전통을 살려 재건축했다. 완공 후 수정궁에는 레스토랑과 예식장, 오락실, 다과점 등이 입점했고, 각종 정치모임을 비롯하여 회갑연, 피로연 등 시민들의 연회 장소로 기능했다.


춘당지 주변은 산책 코스로도 인기가 많았다. 봄에는 창경원 밤 벚꽃놀이를 즐기는 명소였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도 기능했다.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관람객이 뱃놀이를 즐기는 장소로도 쓰였다. 그렇게 춘당지는 역사성을 잃은 채 시민들의 여가 공간이 되었다.

198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창경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놀이 시설, 편의 시설을 전부 철거했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했다. 문화재청에서 내농포로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계획이 있지만 추진이 지지부진한 편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수정(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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