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마 음 2007. 12.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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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바위 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너의 삶이 고달프겠구나!

이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쉬운 말로 하자면 "복도 지지리도 없다"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 그런 사람. 복은 타고난다고 합니다만 그렇다면 그 많은 복 중에서도 가난한 복을 타고 나와서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 곁에서 보기에도 딱하고 안쓰럽고 측은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났느냐 가난한 집 자식으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올 때에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태어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같은 어머니는 아니지만 자신의 어머니의 뱃속을 10개월을 빌려서 알몸으로 태어나는 것은 부잣집 자식이나 가난한 집 자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빈손 움켜잡고 힘찬 울음소리 터트리며 태어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장과정에서 가는 길이 달라서 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복이 달라서 일까요. 노력이 부족해서 일까요.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안타까운 그런 사람이 우리들 주변에는 있습니다. 가난은 대물림한다는 속담도 있기는 합니다만 가난한 자가 그 가난을 털어버리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런데 꼭 사람만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른의 키보다도 훨씬 높이 솟은 바위의 중앙에 삶의 터전을 잡은 어린 소나무 한 그루를 보고 있자니 "앞으로의 삶이 매우 고단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름에는 다른 소나무보다 더 뜨거운 불볕더위에 시달려야 하겠고 겨울에는 더 추위에 떨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탈진곳이기는 하여도 주변이 확 트여서 50년 백 년 많은 세월이 지나면 바위를 쪼갤 듯 더욱더 멋진 일송정으로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의 삶이 매우 고단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넓고 넓은 산에서 왜 하필이면 바위의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참 모를 일입니다. 하기는 소나무 씨앗에 날개가 있기는 하지만 제 마음대로 날아갈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바람이 부는 대로 날아가 안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을 겁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는 그런대로 적당히 크고 약간 움푹 페인곳에 흙먼지와 나뭇잎이 떨어져 썩은 곳인데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바위가 틈이라도 갈라져 있으면 그곳으로 뿌리를 깊게 내릴 수라도 있겠는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주변보다는 약간 낮은 바위 부분이지만 어린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은 편편해 보였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1~2cm 정도 조금 낮게 움푹한 곳이었습니다. 어른의 큰 손을 쫙 펴서 손가락을 약간 오므린 정도의 크기밖에는 안 되는 공간에 삶의 터전을 잡았습니다. 여름이면 쉽게 물기가 말라버릴 것만 같은데 그곳에서 어떻게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을까를 되뇌어 보는 사이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는 기독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저의 머릿속을 맴돌고 지나갑니다. 이렇게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자연의 삶도 있다는 것을 보면서 오늘 저의 삶이 조금은 고단하고 힘들어도 이러한 삶마저 누리지 못하고 더욱더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이 있음을 마음속에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