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씨자료

양씨가문을 빛낸 인물 - 양기탁(梁起鐸)

마 음 2009. 1. 13. 14:31

 

양기탁 (梁起鐸 1871∼1938) 

독립운동가·언론인. 초명은 의종(宜鍾). 평양(平壤) 출신.


1895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인 J.S. 게일을 도와 《한영자전(韓英字典)》을 편수하였다. 1896년 독립협회에 가입했으며, 1898년 만민공동회 간부로 활동하였다.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기자 E.T. 베델(한국명 裵說)과 국한문혼용체 일간신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다음해 8월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를 별도로 발행, 이 신문의 주필로서 국민의 배일사상을 고취하였다. 1908년 안창호(安昌浩)·전덕기(全德基)·이회영(李會榮)·이동휘(李東輝)·이동녕(李東寧) 등과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고, 1910년 국권피탈 뒤 독립운동을 위해 이동녕과 이회영을 만주에 보내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기지를 세웠다. 1911년 9월 일제는 신민회를 해체시키기 위해 이른바 <데라우치[寺內(사내)] 암살음모사건>을 날조하여 신민회원 800여 명을 체포하고 그 중 105명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는데, 이때 양기탁은 4년을 복역하였다. 1920년 《동아일보》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통천교(統天敎)를 창시, 종교운동을 표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1년 미국의원단이 내한했을 때 독립진정서를 제출하여 투옥되었다가 모친상으로 가출옥한 뒤 만주로 탈출,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였다. 1925년 1월 오동진(吳東振)·김동삼(金東三) 등과 정의부(正義府)를 조직하여 독립운동단체의 통합과 행동통일에 힘썼고, 1926년 4월 고려혁명당을 결성, 위원장이 되었는데 이 당은 주로 정의부의 무장투쟁을 지원하였다. 1935년 의열단·신한독립단·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미주대한인독립당이 통합하여 조선민족혁명당이 조직되자 이에 가담, 대일전선통일에 노력하다가 1938년 장쑤성[江蘇省(강소성)]에서 선도(仙道)를 닦다가 죽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