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오두산성에 있는 통일전망대에 가기 위해서 문산역 앞에서 036번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성동 사거리 하차하여 좌측의 통일휴게소 주차장 방향으로 10여 분 걸어갑니다.
통일주차장에는 통일전망대로 가는 무료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고, 도로 건너에는 도보로 걸어갈 수 있는 보행자 전용도로도 있습니다.
통일전망대로 올라갈 때에는 도보로 걸어가기로 하고 철문을 지나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길로 접어들어 걸어갑니다.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 도중에도 멀리 고려 역사관 건설현장이 보입니다. 이 고려 역사관 건설공사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는데, 자금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는 공사가 중단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통일전망대 방향으로는 태극기도 보입니다.
보행자도로에는 이처럼 그림도 그려져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저만치에 자유로 위를 가로질러 통일전망대로 가는 고가도로(교량)가 보입니다.
고가도로 위에서 북쪽 자유로 방향.
고가도로 위에서 남쪽 자유로 방향. 아래로 보이는 고가도로는 셔틀버스 및 관광버스가 통일전망대로 오르고 내려가는 고가도로(교량)
북족 방면의 자유로와 임진강변의 철책.
고려역사관 방향. 고려역사관이 속히 완공되었으면 합니다.
아래에서 본 통일기원북 보호각.
겨례의 북. 통일의 북. 통일기원북.
통일조국의 도약과 비상.
이 통일 염원 비는 평화통일을 위한 7천만 겨레의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 통일조국의 무궁한 번창과 민족 대화합을 상징하고 있다. 두 큰 기둥은 남과 북이며, 두 기둥을 감아 안은 원은 남과 북을 하나로 묶는 통일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기둥 위의 조형은 평화의 비둘기를, 그리고 9개의 작은 기둥은 통일한국의 전국 9도를 뜻한다.
재이북부조신위(在以北父祖神位). 실향민들이 이곳에서 조상님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망배단입니다.
독립운동가 조만식선생 동상.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 건너 북녁땅.
이곳 임진강의 가장 짧은 폭은 60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 곳에 북녘땅이 있지만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건널 수 없는 땅입니다. 박태환 같은 수영선수가 수영하여 간다고 해도 20여 분이면 충분히 헤엄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아직도 갈 수 없는 땅이라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곳에 고향을 두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를 두고 온 실향민들의 마음이야 오죽하리요.
망원경을 통해서 고향을 바라보지만 흐릿한 날씨마져 고향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실향민도 아니니 그저 덤덤한 마음이고, 속히 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열차 타고, 버스 타고 북녘땅 아름다운 곳 마음대로 다녀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임진강 건너 북녘땅이 희미하게 드러납니다..
임진강과 자유로. 남쪽 방향.
통일전망대 내부의 전시장 일부 모습. 통일전망대 방문자들이 남긴 통일염원의 글들.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나오면서 전시장 출입구 방향.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나와 맞은편에 보이던 고려역사관 건립 현장이 궁금하여 들어가 보았습니다만, 공사장 문은 굳게 잠겨있고 공사는 증단된 상태였습니다. 공사장 아래로 살래길이라는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살래길을 따라서 걸어 보면서 바라본 고려역사관.
살래길에서 마지막으로 오두산 통일전망대 방향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평화통일을 기원해 봅니다. 서울에서 차를 타고 자유로, 통일로를 따라서 쉬지 않고 평양까지 달려갈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아쉬운 작별을 합니다.
파주오두산성(坡州烏頭山城) 사적351호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이 성은 오두산 정상을 싸고 축성된 태뫼식 산성으로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에 기록된 백제(百濟)의 관미성(關彌城) 또는 각미성(閣彌城)으로 보기도 한다. 오두산은 한강(漢江)과 임진강(臨津江)의 하류가 만나는 곳에 있으며 매우 가파른 비탈과 삼면이 바다로 싸여 있어 군사상 요충지이다. 백제의 북방 전초기지(前硝基地)였던 관미성은 병신전쟁(丙申戰爭)(396) 에서 고구려 광개토왕(廣開土王)의 수군(水軍)에 함락됨으로써 백제가 국도(國都)인 하남위래성이 포위되는 등 위기를 맞을 만큼 중요한 성이었다. 둘레가 2,072척(627m)의 석성(석성)과 호성석벽의 토성을 갖추고 있는 특징을 한 산성이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를 통하여 계속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한국전쟁 이후 거의 유실, 파손 되었으나 1990년 9월부터 1991년 11월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규모가 밝혀지고,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토기, 백자, 청자, 기와, 철촉 등의 유물이 많이 나왔다. 이 부근 일대에는 수백여 기의 고분이 산재하여 있는데, 최근에 삼국시대의 왕관, 장경호토기, 방추차 등이 발견됨에 따라 삼국시기의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확인되었다. (안내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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