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보제1호 숭례문(남대문)
조선시대 서울 도성의 정문으로 ‘남대문’으로도 불린다. 태조 4년(1395)부터 짓기 시작해 태조 7년(1398)에 완성되었으나 지대가 낮아 볼품이 없고 풍수지리설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세종 29년(1447)년에 개축하였다. 그 뒤 문루가 기울어 성종 10년(1479)에 다시 개축하였다. 원래 기단 양쪽은 한성의 성벽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1908년 도로를 내면서 헐어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장중한 겉모습과 견실한 내부 구조에서 성문으로서의 당당한 면모가 엿보인다. 또한 전형적인 다포식 건축물로 15세기의 목조건축 수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8년 2월 10일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2층 문루가 소실되고 1층 문루 일부가 불에 탔다.
세로로 쓰인 숭례문 현판
도성 문의 현판은 모두 가로로 쓰여 있지만, 숭례문만은 세로로 쓰여 있다. 이것은 ‘불의 산’이라 일컬어지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관악산의 화기가 강해 경복궁에 화재가 나기 쉬운데, 현판 글씨를 세로로 길게 늘어뜨리면 성문 밑을 막고 누르는 셈이 되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다. 숭례문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은 태종의 맏아들 양녕대군으로 알려져 있다.
상세설명
조선시대 서울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의 정문으로 원래 이름은 숭례문이며,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대문이라고도 불렀다.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이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인데 1961∼1963년 해체·수리 때 성종 10년(1479)에도 큰 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문은 돌을 높이 쌓아 만든 석축 가운데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을 두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로 지은 누각형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러한 지붕을 우진각지붕이라 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그 형태가 곡이 심하지 않고 짜임도 건실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봉유설』의 기록에는 ‘숭례문’이라고 쓴 현판을 양녕대군이 썼다고 한다. 지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서울 성곽 중에서 제일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다. ㅇ 숭례문 방화 화재(2008.2.10) -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崇禮門放火事件)은 2008년 2월 10일 ~ 2월 11일 숭례문 건물이 방화로 타 무너진 사건이다. 화재는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40분 전후에 발생하여 다음날인 2008년 2월 11일 오전 0시 40분경 숭례문의 누각 2층 지붕이 붕괴하였고 이어 1층에도 불이 붙어 화재 5시간 만인 오전 1시 55분쯤 석축을 제외한 건물이 붕괴되었던 숭례문을 복구하여 2013년 05월 04일 공사를 완료하고 복구완료 기념식을 갖고 국민에게 공개되었다 .
방화로 소실되기 전의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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