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은 김민기 작사·작곡의 노래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한 청년의 실존적 고뇌와 결단을 담은 가사의 이미지 전개도 일관되고 정연하다. 고민과 마음의 정돈, 시련이 예정되어 있는 광야로 나아가고자 결단하는 주인공의 심리적 흐름이, 밤에서 새벽을 거쳐 아침과 한낮으로의 시간 변화, 고민의 어두운 공간에서 아침이슬이 맺힌 동산을 거쳐 묘지가 있는 광야로의 공간 변화를 통해 탁월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특히 미래인 ‘한낮’에 다가올 ‘시련’을 예감하는 부분에서는 단조로 전조 되었다가, 고민 끝에 ‘광야’로 나아갈 결단을 선언하는 ‘나 이제 가노라’의 종반의 절정부에서 장조로 되돌아와 화려한 고음의 선율로 가슴 벅찬 결단을 노래하는 등, 가사의 심리 변화와 음악이 잘 결합되어 있다. 또한, 대중가요에서 자주 쓰는 영탄의 어미를 거의 쓰지 않고, ‘배운다’, ‘시련일지라’, ‘가노라’ 등, 담담한 서술이거나 선지자적인 어조를 쓰고 있는 점도, 음악 전체에서 흐르는 절제된 감정과 아멘 마침의 화성과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작품적 완성도 덕에, 이 노래는 대중음악 평론가들에 의해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 수준에 올려놓은 곡’, ‘70년대는 김민기의 「아침이슬」로 시작되었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이 노래는 매우 오랫동안 수난당했고 그 때문에 전혀 다른 존재방식으로 긴 생명력을 유지했다. 대중가요로서의 「아침이슬」은 양희은이 1971년 그의 첫 독집음반에서 발표한 후, 그해 가을 창작자인 김민기의 첫 독집음반에도 수록되어 알려졌다. 1972년 봄 김민기의 음반은 법적 근거 없이 판매가 금지되었으나, 양희은의 음반 등을 통해 이 노래는 계속 판매되었다. 그러나 1973년은 조영남이 음반과 방송 등에서 ‘태양은 묘지 위에’를 ‘태양은 대지 위에’로 바꾸는 등의 수난을 겪다가 1975년 말에 공식적인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대중매체와 음반 시장에서 사라졌으나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이 노래는, 이후 구전 등을 통해 대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 널리 애창되는 대표적인 민중가요가 되었고, 시위 현장에서도 많이 불렸다.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5년부터 1980년대까지는 사람 많은 곳에서 「아침이슬」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시위로 간주할 정도였다.
이렇게 민중가요로 존재방식이 바뀐 이 노래는,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수용자들에 의해 그 ‘시련’과 ‘나 이제 가노라’의 선언이 민주화운동의 그것으로 적극적으로 해석되었고, 창작자 김민기는 이 노래만으로도 오랫동안 합법적 활동이 불가능한 불온한 인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정치권력이 이 노래를 불온시할수록 이 노래의 높은 인기는 계속 유지되었다. 1980년대 초중반, 김민기의 1971년 음반은 중고음반 시장에서 최고가로 거래되었고, 「아침이슬」은 1990년대 초까지 각종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로 꼽혔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약간의 민주화 조치가 이루어질 시점 이루어진 「아침이슬」의 해금이 민주화 조치의 상징으로 이야기될 정도로, 이 노래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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