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탐방센터 제1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의상봉은 매우 가파른 봉우리로 보이고 실제로 등산로 역시 가파른 산길로 오르게 된다. 그러나 위험지역에는 안전보호시설이 있어 그리 어려운 등산길은 아니지만, 체력소모가 많다고 할 수 있기에 자신의 체력을 고루 안배하여 천천히 오르면 즐거운 마음으로 의상봉을 올라 의상봉 정상에서의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상봉을 시작으로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상월봉→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의상 능선을 탐방할 수 있지만, 오늘은 북한산성 탐방센터에서 의상봉을 오르고 가사당 암문→ 국녕사→ 북한동 역사관→ 칠유암→ 북한산성탐방센터로 원점회귀 산행이 될 것이다. 현재시각 10시 04분 출발.
의상봉을 오르면서 바라본 용출봉 방향.
용출봉 역시 의상봉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바윗길을 비집고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이기도 하다.
의상봉을 오르며 올려다본 의상봉 정상부.
의상봉을 오르며 내려다본 서울특별시 은평구 일대와 멀리 한강 너머 강서구와 인천 앞 서해까지 조망되기도 한다. 오늘은 대기가 좀 흐려서 서해까지는 볼 수 없지만, 게양산을 빼고는 높은 지대가 보이지 않은 아늑하고 편안해 보이는 지역이다.
의상봉의 기암.
의상봉 정상부에서 건너다본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 만경대가 손에 잡힐듯하다. 주변으로 용암봉 노적봉이며 염초봉 원효봉이 알몸을 드러내 듯하고 가운데로 깊숙이 패인 골짜기를 따라서 북한산성 탐방센터에서 백운대에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개연폭포도 원효봉의 넓은 암벽 아래 이 계곡에 똬리를 틀고 자리를 잡고 있다.
의상봉 정상부와 건너편의 용출봉.
유난히도 무더웠던 폭염의 여름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산등성이에는 가을빛이 묻어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의상봉에서.
동료들과 함께 백운대를 뒷배경으로 의상봉에서의 흔적을 남겨본다.
북한산 의상 능선의 의상봉은 해발 502m로 그리 높지는 않으나 등산로가 조금은 험한편이다. 산에서의 사고는 험한지역이라서 더한 것은 아니며 항상 자신의 체력에 발걸음을 맞추고 안전사고에 주의하면 즐거운 등산길이 되리라고 여겨진다.
용출봉 오름길에서 등산사고가 발생한 거 같았다. 구급용 핼기가 사고자를 이송하는 모습을 보니까.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다가 낙상사고일 수도 있겠고, 그게 아니면 체력과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큰 불상사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사당암문 근처에서 바라본 백운대 방향. 가슴이 벅차도록 아름다운 모습이다.
국녕사 대웅전 앞에서 참배하는 신도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북한산 국녕사 대불.
국녕사 등룡각.
국녕사(國寧寺)
부황사(扶皇寺) 서남쪽 아래인 이곳은 옛날부터 신라의 의상(義湘)이 참선하던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 때문에 절 뒤쪽의 봉우리를 의상봉이라 하였다. 유정(惟政)은 조선 후기에 사찰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이곳에 사찰이 들어선 것은 북한산성의 축조와 연관되어 있다. 당시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던 성능(聖能)의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숙종 39년(1713)에 당시의 승려 청철(淸徹)과 청선(淸禪)이 북한산성을 축성할 때 팔도의 사찰에 영을 내려 의승(義僧)을 뽑았고 이들 의승을 산성 안에 두고 수비와 관리를 위해 13개의 승영사찰(僧營寺刹)을 지었는데 국녕사(國寧寺)는 이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무기를 보관하는 창고를 두어 병영의 역할을 겸하게 하였다. 사세가 확장되었을 때는 86칸에 이를 정도의 큰 규모의 절이었다.
국녕사의 위치로 보아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성벽과 그 중간에 위치한 가사당압문(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맡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제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지만 대일항쟁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 그 후 폐허가 된 터에 비구니 보경이 임시 건물을 짓고 50년간 사찰의 명맥을 유지했는데, 이 건물도 1991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사단법인 능인선원의 원장인 지광이 조계종의 의뢰를 받고 1998년 10월부터 불사에 착수해 사찰을 복원하였는데, 현재는 보경이 주지를 맡아 능인선원의 수련원으로서 중창 불사를 이끌고 있다.
사찰의 건물로는 대웅전·관음전·삼성각·등룡각·종각·요사채(종무소) 등이 있다. 이외에 최근에 노천에 조성한 국녕대불 즉 합장환희여래불(合掌歡喜如來佛) 좌상이 자리를 하고 있다. 불상이 합장한 양식은 우리나라의 기존 불상 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데 지광이 중국 돈황석굴의 도상을 보고는 재현하게 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불상 조성 시에는 『신수대장경』의 도상부를 참고하였다. 합장은 양손을 모아서 중생과 부처의 차별 없이 수행을 통해 정각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녕대불 뒤의 의상봉 아래에 석주 모양으로 불쑥 올라와 있는 석봉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현재는 접근할 수 없어 조사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 보면 어렴풋이 반가사유상을 취한 마애불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불에서 우측 방향으로 돌아가면 근래에 복원한 ‘ㄱ’ 자형으로 된 동기와을 올린 백운당(白雲堂)이라는 요사채(공양간)이 있다. 여기서 계단을 오르면 새로 쌓은 높은 축대위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에 이르는 계단이 끝날 무렵 향 우측으로 단칸의 등룡각(登龍閣)이라는 누각이 있다. 1층은 콘크리트에 돌을 붙여 만든 팔각평면이고 위층은 목조 방형누각이다. 이 누각에 오르면 계곡 건너편 준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장대석 기단 위에 화강석 원형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워 지었으며 공포는 다포형식이고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이다. 한식 동기와를 얹었는데 용마루 양쪽에는 용두로 장식했다. 다포 대웅전의 일반적인 웅장함과 화려함을 지녔으며 내부에는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양쪽에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대웅전에 이르는 통로는 원래 우측 방향의 등룡각 쪽 계단이 아니라 지금도 남아있는 좌측 방향의 바위동굴인 관음굴을 경유했다고 한다. 대웅전 뒤 언덕 위에는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삼성각이 있다. 삼성각은 방형기둥에 초익공형식의 건물로 동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이다. 절로 올라가는 계곡 오른쪽에는 ‘한월당대선사(漢月堂大禪師)’라는 명문이 새겨진 석종형 부도 1기가 있다. 지대석 중앙에 돌기를 두어 석종을 받치고 있으며 위가 넓은 석종형 탑신 위에는 탑신과 한 몸으로 연봉형태의 상륜을 올린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의 승영사찰 중 현존하는 것으로는 국녕사를 비롯해 근래에 사단법인 불광사가 복원한 중흥사와 태고사(암)·진관사·노적사·승가사·상운사 등이 있다.
북한산 계곡의 칠유암(七遊巖). 성인 일곱 명이 둘러앉아 유흥을 즐기기에 넉넉한 바위라는 뜻이겠지.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바위가 기울어져서 앉아 놀기에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은 국립공원의 계곡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의상봉 하산을 완료하고 북한산성 탐방센터 옆 북한산 둘레길 둘레교 앞에서 올려다본 모습으로 왼족의 원효봉과 백운대 일부 그리고 만경대와 노적봉이 드러나 보인다. 현재 시각 13시 40분. 3시간 40분의 시간이 소요된 의상봉 탐방을 종료한다. 오늘의 북한산 의상봉 등산으로 얻어진 에너지로 건강한 삶을 이어가시기 바라며 즐거운 한가위 연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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