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 )은 1990년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 <랑게르한스섬에서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 정의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소확행은 현대 사회에서 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등 각박한 일상생활 속에서 작은 기쁨에라도 만족하고자 하는 서민들의 욕구가 드러난 용어이다. 소확행의 사례는 개인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바쁜 오후 시간의 차 한 잔, 동료나 친구와 주고받는 작은 선물, 퇴근 후 맥주 한 잔 같은 것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랑게르한스섬에서의 오후>라는 수필집을 읽어보지 못하였다. 40여 년의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산촌에서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소확행은 무엇일까? 요즘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보이는 때가 있는데 필자는 자연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고 자유인으로 부르고 싶은 사람이다. 처음 산촌에 자리를 잡을 당시에는 서울에서 먼 거리에 있는 경상도 지역의 명산을 쉽게 올라볼 계획이었는데 정작 산촌에서는 교통이 불편하여 등산을 나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캠프가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이 백두대간 난함산 아래여서 산촌 생활 자체가 등산하는 생활과 비슷하다. 앞동산 뒷동산을 오르면 백두대간 등산길이다. 처음 김천 산촌에 자리를 잡았을 때에는 김천지역과 영동지역의 산들을 뒤지고 다니고 구미와 대구지역의 산들을 대부분 둘러보았다. 김천에 캠프를 마련하기 전 서울에 거주할 때 영남알프스 환종주를 계획하여 경남 밀양시 산외면 남기리 정문마을 앞 비학산에서부터 시작하였으나 이 지역의 이정표가 너무나도 부실하고 중산을 넘어가면서 용암봉과 용암산을 같은 지점으로 생각하여 이정표가 있는 용암산으로 발길을 돌려서 어둠이 내릴 무렵에 용암산 아래 천용사 앞.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밀양송전탑공사 현장까지 내려오는 크게 낭패를 보는 일이 발생하여 천용사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산행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산행을 일단 중지하고 서울로 돌아갔었던 일이 생각난다.
이후 십여일이 지난 후 김천에 캠프를 마련하게 되어 밀양시 내일동 활성 1동 마을 앞 정자나무 앞에서부터 영남알프스 환종주 재시도를 하였었지만 이틀 만에 배태고개에서 원동역으로 하산한 이후로 차일피일 미루다 지금에 이르렀는데 언제 다시 영남알프스 환종주를 시도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김천 캠프에 자리를 잡은 게 지난 2014년 5월 13일이니 어느덧 5년이 넘어 6년 차로 접어들었다. 요즘은 산촌에서 야생화와 화초 농작물 등 가꾸는 식물이 많아 농부 흉내 내는 일로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등산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필자가 600㎡가 넘는 산촌 캠프에서 애지중지 보살피고 가꾸어야 하는 식물의 종류만도 70여 종류가 넘다 보니 남들이 보기에는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바쁘지 않은 생활처럼 보이는 하루하루가 필자에게는 바쁜 생활이고 이러한 생활에서 얻는 즐거움이 필자의 진정한 소확행(小確幸 )이라고 생각된다. 식물들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만져보고 입으로 즐기는 행복. 이웃과 차 한잔 같이 마시는 즐거움. 힘이 축적되면 호미 들고 소일하고 힘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쉬는 즐거움. 이러한 사소한 즐거움들이 소확행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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