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대서 절기와 북한산 풍경

마 음 2022. 7. 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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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산에서 원추리꽃을 많이 볼 수 있다. 원추리의 노란 꽃이 참 곱다. 

 

 

 

본래 기자봉 능선의 기자촌 방향의 1/2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어 있어 기자촌 공원 관리초소에서 계곡을 따라서 오르거나 기자촌 공원 관리초소 바로 뒤에서 오른쪽의 계곡을 건너 기자 능선 옆의 작은 능선을 따라서 오르다가 기자 능선 중간지점에서 합류하게 되는데 작은 능선을 따라 오르게 되면 이러한 기자 능선 하단부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오르게 된다.   

 

 

 

작은 기자능선의 기암들이 많은 바위공원이다.

 

 

 

바위공원에서 이러한 노송도 감상할 수 있고...

 

 

 

선림봉(독바위봉) 방향. 선림봉은 출입금지구역.

 

 

 

본 기자능선과 작은 기자 능선이 합류하여 기자봉 정상 방향으로 오른다.

 

 

 

민대머리봉 풍경.

 

 

 

기자봉 정상방향.

 

 

 

기자 능선의 기자암.

 

 

 

국립공원 북한산 기자능선의 정상 기자봉과 건너편의 향로봉.

 

 

 

기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진관봉(왼쪽) 삼각점봉(중앙) 향로봉(오른쪽)

 

 

 

기자봉 정상에서 바라본 족두리봉 방향 풍경.

 

 

 

 

진관봉 오름길에서의 오른쪽 바위벽 위의 소나무 한 그루..

 

 

 

진관봉 정상 부분의 바윗길 등산로.

 

 

 

진관봉 정상.

정상을 알려주는 표지목은 없지만 이곳이 진관봉의 정상 부분이다. 진관봉 정상에서 진관사 방향으로의 하산이나 등산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되어 있다. 

 

 

 

진관봉 정상에서 바라본 중앙의 삼각점봉과 뒤로 비봉 관봉 향로봉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는 모습이다.

 

 

 

관봉

 

 

 

뒤로부터 의상능선 중앙의 응봉능선 제일 앞의 바위봉은 웨딩바위. 제일 뒤로 북한산의 최정상인 백운대가 조망되지만, 안개가 많아 희미하다.

 

 

 

비봉과 관봉.

 

 

 

삼각점봉 조금 못미처에서 본 비봉 관봉(왼쪽)과 향로봉 풍경.

 

 

 

삼각점봉 정상 부분.

 

 

 

삼각점봉. 정상 바위에 국토지리원의 측량점이 설치되어 있어 삼각점봉이라고 하는 거 같다. 

 

 

 

삼각점봉에서 족두리봉 방향.

 

 

 

삼각점봉에서 향로봉 방향. 삼각점봉 정상의 소나무 뿌리가 바위 위로 드러나 있는 모습이어서 소나무의 생명이 애처로워 보인다.

 

 

 

삼각점봉에서본 향로봉

 

 

 

삼각점봉에서 뒤돌아본 향림봉- 기자봉- 진관봉- 삼각점봉(왼쪽부터)

 

 

 

삼각점봉 정상.

 

 

 

돌양지 꽃.

 

 

 

향로봉을 오르다가 뒤돌아본 삼각점봉.

 

 

향로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기자봉 진관봉 삼각점봉 풍경.

 

 

 

향로봉 정상에서 본 관봉과 비봉. 뒤로 응봉능선 의상능선 문수봉 등이 안갯속에 희미하다.

 

 

 

향로봉 정상을 상징하는 소나무.

 

 

 

향로봉(해발 535m)

 

 

 

관봉을 오르면서 본 향로봉 능선. 향로봉 능선은 출입제한구역이다. 다만 향로봉 정상 부분은 관봉 능선길에서 누구라도 잠시 들렀다가 나올 수는 있다. 

 

 

 

관봉에서 바라본 비봉. 비봉 정상에는 대한민국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 신라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진흥왕 순수비

대한민국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 신라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 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북한산 비봉에 세워져 있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원본과 똑같이 복제한 비를 발견 당시의 자리에 그대로 세운 것입니다.

 

 

이곳 관봉에서 전진하지 않고 향로봉 우회길을 이용하여 족두리봉을 들러 일정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향로봉 우회길의 저 바위는 옆으로 넘어지거나 아래로 미끄러질듯한데도 저렇게 버티고 있다. 저 바위 옆을 통과할 때에는 통과하는 순간 이게 옆으로 누워버려 압사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하지만, 바위의 생김새와는 달리 무게중심이 잘되어 있는 듯하다..

 

 

   

향로봉 우회길의 한 모퉁이.

 

 

 

향로봉 우회길에서 본 향림봉(왼쪽) 기자봉 진관봉 방향.

 

 

 

기자봉과 진관봉. 진관봉 중앙지점의 바위벽에는 커다란 동굴이 하나 숨어있다. 일명 북한산 동굴

 

 

 

무명봉에서 본 족두리봉. 왼쪽으로 인왕산 안산 백련산 등이 조망된다. 날씨가 좋다면 청계산 관악산까지도...

 

 

  

족두리봉 바위벽에 난이도 높은 릿지꾼들이 보인다.

 

 

 

족두리봉 아래 조망바위 위에서 바라본 족두리봉 바위 슬랩

 

 

 

족두리봉 조망바위.

 

 

 

족두리봉 정상 이정목과 정상 부분.

 

 

 

오늘의 마지막 산그림. 선림봉

 

2022년 07월 23일 토요일은 큰 더위를 뜻하는 대서 절기이다. 대서 절기의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이열치열로 잊어보려고 07시 정각에 집을 나서서 북한산 자락을 올랐다. 갈현동 집에서 연신내→ 불광중학교→ 선림사 입구→ 북한산 기자촌 관리초소→ 작은 기자 능선→ 본 기자 능선 합류→ 민 대머리봉 언덕→ 기자봉(정상)→ 진관봉(정상)→ 삼각점봉(정상)→ 향로봉(정상)→ 관봉→ 향로봉 우회→ 사거리→ 무명봉→ 족두리봉 조망바위→ 족두리봉(정상)→ 불광사 지킴 초소→ 불광중학교→ 연신내→ 갈현동 집까지 약 6시간 소요하면서 대서 절기의 무더위를 즐거운 마음으로 잊어본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