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층 건물을 휘감고 올라간 거대한 능소화 줄기에 붉은 꽃이 곱게 피었다. 이처럼 크게 자란 능소화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능소화 옆에는 전신주의 전선과 각종 케이블과 광고판 등이 뒤엉켜 있어서 볼품 사나운 모습이다. 이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모습이라는 말인가? 자연환경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능소화 凌霄花 Chinese trumpet vine
능소화를 등라화藤羅花. 자위화紫葳花. 타태화墮胎花라고도 부른다. 요즘 어디를 가나 능소화가 만발이다. 생명력이 강해서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줄기식물이다. 옛날에는 엄격하게 양반집 정원에만 심었다고 하여 양반꽃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주황색의 선명한 꽃이나 짙은 녹색의 잎이 품위 있고 우아하다. 품위 있고 우아하다는 것은 결코 양반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똑같은 모습으로 태어납니다만. 그들의 신분이 조금 달라서 반상을 가리는 것뿐이다. 이러한 반상의 제도는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노예제도가 있었던 것이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신분의 차이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 알량한 신분으로 자연이 선물한 꽃까지 독점하려고 하였다니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능소화는 다섯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한 개로 붙어 있는 통꽃이므로 꽃이 질 때도 그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고 활짝 핀 그대로 톡톡 떨어진다. 주체하기 힘든 커다란 슬픔이 닥쳤을 때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고 하는 말처럼 능소화 꽃이 질 때에는 꽃송이 자체가 뚝뚝 떨어진다. 꽃이 크고 가운데 난 줄무늬 때문에 나팔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덩굴 가지의 마디 끝에 흡근이 생겨 담쟁이처럼 나무나 벽을 타고 오르기도 하므로 관상용으로 정원 담벼락 가까이에 많이 심는다.
능소화의 전설(믿거나 말거나)
작은 시골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화'는 아주 어여쁜 아가씨였습니다. 얼마나 어여쁜지 근방의 총각들의 마음을 다 빼앗아 가버릴 정도였습니다. 그 소문은 소문을 타고 궁궐에까지 들어갔고, 임금은 소화를 궁녀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여쁜 소화에게는 말 못 할 아픔이 있었으니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듣지 못했으니 자연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던 소화, 그래서 그는 누가 자기를 바라보면 그저 웃어주었던 것이죠. 그렇게 웃는 모습만 보아도 너무 아름다웠기에 사람들은 소화가 벙어리라는 사실조차도 몰랐습니다. 단지 수줍음을 많이 타서 그런가 했던 것이죠.
소화의 어머니는 그저 소화가 평범하게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말 못 하는 벙어리인데 아무리 예뻐도 평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때로 산신에게 '저보다 딸이 먼저 죽게 해 주십시오' 기도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소화가 궁녀로 뽑혀 가자 경사가 났다고 했지만, 두 모녀에게 그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두 모녀는 밤새워 서로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았던 것이죠. "소화야, 그곳에 가서도 잘 지내야 한다." "…." 소화는 궁궐에 들어가자 곧 임금의 눈에 들어 빈이 되었지만 소화가 벙어리라는 것을 안 임금은 그 이후로 소화를 찾는 일이 없었습니다. 다른 궁녀들도 그를 시기하였고 소화는 가장 깊은 곳, 구석진 곳에 살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임금에게 잊혀 살아가던 소화는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한편 소화를 궁궐로 보낸 뒤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바늘방석에서 지내는 것만 같았습니다. 소화를 팔아 자기가 편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서 죄의식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궁궐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딸의 소식은 빈이 되었지만 벙어리란 것이 알려진 후에 궁궐의 가장 깊고, 구석진 곳에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이후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앓아누우실 즈음에 소화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다시 찾아주지 않는 임금에 대한 원망과 궁녀들과 다른 빈들의 시기와 질투 등으로 앓아누웠습니다. "하느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요." "하느님, 단 한 번만이라도 소화를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두 모녀의 간절한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마침내 어머니는 소화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울다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궁궐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소화는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집을 찾았습니다. 동네 사람들마다 혀를 차며 두 모녀의 기구한 운명을 슬퍼하였습니다. 소하는 어머니의 무덤에 엎드려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소하야, 울지 마라. 에미가 네 귀가 되어줄게."
소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난생처음 생생하게 귀로 듣는 소리였습니다. 어머니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나누는 대화였습니다. "어머니, 아니에요. 편히 쉬세요." 무덤가에서 소화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벙어리라더니 저렇게 또박또박 말을 하잖아!" "그럼, 그게 헛소문이었단 말인가?" 소화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람들이 두런두런 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분명히 남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요. "어머니!" "그랴, 여름날이면 네가 있는 궁궐 담을 끼고 피어나마. 그래서 우리 소화가 임금님에게 사랑받는 것도 봐야지. 내 무덤가에 있는 흙 한 줌을 가져다 네가 거하는 궁궐 담에 뿌리려무나." 장례식을 마치고 궁궐에 들어간 소화를 임금님이 불렀습니다. "빈은 그동안 왜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는가?" "사실은 그동안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래? 짐은 빈이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런다고 생각했었소."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목숨을 거둘 수도 있었으나 너무 아름다워 차마 그럴 수가 없었소."
소화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무덤에서 가져온 흙을 궁궐의 담에 뿌렸습니다. 임금의 사랑을 듬뿍 받을수록 소화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져만 갔습니다. 이른 봄부터 어머니 무덤가의 흙이 뿌려진 궁궐담에는 푸릇푸릇 싹이 나오며 담장을 기며 이파리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여름날, 귀 모양을 닮은 꽃이 피었습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 그 이후로 능소화는 아주 오랫동안 궁궐을 출입하는 양반들 집에 심어져 사랑을 받아 양반꽃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답니다.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몰아쳐도 끝내 다시 피어나는 강인한 꽃이 된 이유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피어났기 때문이랍니다.
봉산 전망대에서
편백 전망대에서
편백정과 은평둘레길
느지막이 뒷동산에 올라가 보니 가까운 북한산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하늘이 뿌였다. 미세먼지가 많은 것인가.
'목본화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마귀쪽나무(까마귀쪽나무) (1) | 2023.07.18 |
---|---|
설악산 야생화 (0) | 2023.06.25 |
도심 화단에 핀 장미꽃 한 송이 (0) | 2023.05.25 |
수국(백당나무) (0) | 2022.06.08 |
장미꽃 세자매 (0) | 2022.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