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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지폐 발행 앞두고 본 화폐속 인물-문화재"

마 음 2007. 1. 15. 00:26

새 지폐 발행 앞두고 본 화폐속 인물-문화재"

《1956년 한국은행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얼굴을 디자인해 넣은 500환권을 발행했을 때였다. 한국은행은 대통령의 위엄을 살리기 위해 지폐 한가운데에 얼굴을 배치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지폐를 반으로 접다보니 얼굴에 금이 가고 대통령의 얼굴이 훼손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심지어 “독재자 이승만을 욕보이기 위해 일부러 가운데에 배치했다”는 얘기까지 떠돌았다.

 

 이 상황에서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1972년 국내 최초로 최고액권인 1만 원권을 만들 때였다. 한국은행은 고심 끝에 한국 최고의 문화재인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 모습을 디자인해 넣기로 결정했다. 그리곤 시쇄품을 만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발행 공고까지 마쳤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기독교계에서 “불교 문화재인 석굴암과 불국사를 1만 원권에 표현하는 것은 특정 종교를 두둔하는 일”이라고 반발한 것이다.

화폐 디자인의 단골 소재인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 이들을 잘 들여다보면 이처럼 비밀스럽고 흥미진진한 사연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화폐에 진한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지, 1960년대 화폐 속 인물이 25일 만에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지, 1970년대 율곡 이이와 세종대왕의 얼굴이 왜 서구적으로 그려졌는지 등등.

22일 새로운 1만 원권과 1000원권이 발행된다. 크기와 색상도 달라지고 등장하는 문화재도 많이 바뀐다. 이를 계기로 화폐 속의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들의 사연을 알아 본다. 》

○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를 표현하는 이유는

현재의 1만 원권엔 세종대왕 초상과 자격루, 경회루가 그려져 있다. 그러나 새 1만 원권엔 세종대왕의 초상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자격루와 경회루 대신
용비어천가,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천체 망원경이 들어간다. 새 1000원권의 경우 퇴계 이황의 초상은 그대로 있지만 투호(投壺) 도구와 도산서원이 빠지고 창호 무늬, 성균관 명륜당, 퇴계의 집필 모습을 그린 겸재 정선의 계사정거도(溪舍靜居圖)가 새로 등장한다.

하지만 화폐에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를 표현한다는 기본 원칙엔 변함이 없다. 2006년 1월 새로 발행한 5000원권에는 율곡 이이의 초상과 전통 조각보, 신사임당 작품으로 알려진 초충도(草蟲圖)가 표현되어 있다. 5원짜리와 10원짜리의 주화에도 거북선과 다보탑이 들어 있다.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에 유통되었던 10원권엔 첨성대와 거북선, 100원권엔 독립문과 경회루, 500원권엔 숭례문이 당당하게 그려져 있었다.

역사적 인물과 문화재를 넣는 이유는 그 인물을 통해 화폐의 권위와 신뢰감을 표현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인물과 관련된 문화재를 보여 준다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 조선시대 화폐에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등장한 까닭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 화폐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을 꼽는다면 조선 후기 별전(別錢)의 사랑을 나누는 남녀를 들어야 할 것이다. 별전은 공식적으로 유통된 화폐가 아니라 기념주화의 일종이다. 성희를 즐기는 남녀는 한 쌍이 아니라 무려 네 쌍. 인물은 단순하게 처리되었지만 그 자세는 대담하고 노골적이다. 이 같은 남녀상열지사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다산(多産)에 대한 기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 근대 화폐에 처음 등장한 인물은

근대 화폐에 처음으로 등장한 인물은 1914년
조선은행이 발행했던 100원권의 대흑천상(大黑天像). 대흑천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이다. 여기에 그려진 대흑천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상상해 온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15년 조선은행이 발행한 1원권, 5원권, 10원권엔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수노인(壽老人)이 그려졌다. 수노인상은 1940년대까지 조선은행이 발행한 거의 모든 화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수노인이 아니라 조선 말기의 문인 관료였던 김윤식이라는 얘기도 전한다. 김윤식의 사진을 보면 화폐 속의 노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뚜렷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 이승만의 얼굴이 지폐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밀려난 이유는

지금의 한국은행이 출범(1950년)하고 나서 화폐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는 1950년 8월 발행한 1000원권에 처음 모습을 보인 이후 1950년대 말까지 대부분의 지폐에 독점하다시피 등장했다.

이승만 초상의 위치는 처음엔 지폐의 왼쪽이었지만 1956년 발행된 500환권에선 가운데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폐를 접는 과정에서 얼굴이 훼손되는 문제가 발생하자 화가 난 경무대는 즉시 도안을 바꾸라고 한국은행에 엄명을 내렸다. 이듬해 대통령의 초상은 지폐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 세종대왕과 율곡의 얼굴이 서구적인 까닭은

살아 있는 인물에서 역사적 인물로 바뀐 것은 1960년부터. 당시 500환권, 1000환권에 세종대왕이 등장했고 1970년대 들어
충무공 이순신(100원짜리 주화, 500원권), 율곡 이이(5000원권), 퇴계 이황(1000원권) 등이 인물 모델의 대열에 합류했다.

1972, 73년 5000원권과 1만 원권을 만들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국내의 화폐제작 기술이 부족해 영국의 전문업체인 토머스 델라루사에 제작을 의뢰했다. 한국인 얼굴의 특징을 잘 모르는 영국 업체는 이이와 세종대왕의 얼굴을 갸름하게, 코를 오똑하게 묘사하는 등 서구적인 얼굴로 표현하는 우를 범했다. 이를 놓고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자 정부는 곧바로 역사적인 인물의 표준 영정을 정해 이것을 화폐에 적용하도록 했다.

○ 가장 단명한 화폐 인물 모델은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권엔 특이하게도 일반인 모자상(母子像)이 등장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저축통장을 함께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민의 저축 심리를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이 100환권은 제3차
화폐개혁으로 인해 6월 10일 발행이 중단됐다. 불과 25일 만에 수명을 다했으니, 한국 화폐 역사상 가장 단명한 인물 모델이 되고 말았다.

○ 근대 화폐에 처음 등장한 문화재는

우리 화폐에 처음으로 선보인 문화재는 경기 수원 화성의 화홍문. 화홍문은 국권 상실 이후인 1910년 12월 옛 한국은행(훗날 조선은행으로 개칭)이 발행한 1원권에 그려졌다. 이어 1911년 발행된 5원권엔 경복궁 광화문이, 10원권엔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가 모습을 보였다.

문화재는 그 후 오랫동안 화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1949년 조선은행의 신 5원권, 신 10원권에 독립문이 들어가면서 다시 등장했다.

문화재가 화폐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50년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그해 8월 발행한 100원권의 광화문을 필두로 1952년 탑골공원과 원각사지 10층 석탑(신 1000원권, 500원권), 1953년 거북선(1환권, 5환권, 10환권, 100환권, 1000환권)과 숭례문(신 10환권)으로 이어지면서 문화재 전성시대를 열었다.

숭례문, 거북선, 원각사지 10층 석탑과 탑골공원은 1960년의 화폐에도 계속 들어갔다. 또한 1962년엔 첨성대(10원권)와 경회루(100원권)가, 1966년엔 다보탑(10원짜리 주화)이 추가되었다.

○ 1만 원권에서 불국사와 석굴암이 사라진 이유는

최고액권인 1만 원권이 처음 발행된 것은 1973년. 이에 앞서 1972년에도 1만 원권이 제작되었다. 그때 한국은행이 석굴암 본존불과 불국사 모습을 넣어 시쇄품까지 만드는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일부 기독교계의 반발에 부닥쳐 발행을 취소하고 말았다. 우리 문화재를 특정 종교의 산물로 보는 좁은 시각이었으나, 어찌되었건 국내 최초의 1만 원권 발행은 이렇게 어이없이 무산돼 버렸다. 결국 이듬해인 1973년 세종대왕 초상과
경복궁 근정전으로 도안을 바꾸어 새로운 1만 원권을 만들었다. 박 전 대통령이 서명한 1만 원권 시쇄품은 현재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수십 년이 흐르면 이것 자체가 귀중한 문화재가 될 것이다.

○ 새 1만 원권 속 문화재의 의미는

새로 발행되는 1만 원권에 등장하는 일월오봉병은 조선시대 왕의 자리(용상·龍床) 뒷면에 세워두었던 병풍 그림을 말한다. 여기서 일월(해와 달)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고 다섯 봉우리는 왕이 다스리는 국토를 상징한다. 용비어천가는 세종 때 정인지 등이 지은 서사시로, 조선 왕조의 창업과 번영을 노래한 작품이다.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했던 혼천의와 천체 망원경은 세종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 문화재다.

이들 문화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화폐금융박물관 백남주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세종시대는 문화와 과학의 르네상스기였다. 1만 원권에 등장하는 문화재들은 세종시대의 이 같은 면모를 집약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 이들 문화재가 상징하는 것은 민족 번영에 대한 세종의 열망, 인문과 과학 실용 정신을 모두 구현했던 세종의 위대한 정신, 바로 그것이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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