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세계

김대건 신부

마 음 2006. 12. 17. 22:03

 

절두산 성지 김대건 신부상 

 

본관은 김해. 충청남도 내포(內浦) 솔뫼(지금의 당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진후(震厚)는 50세 때 교인이던 아들의 권유로 입교(入敎)한 후 1791년의 박해 이래 수차례 검거되어 고문·귀양 등의 고난을 겪다가 1814년 충청남도 해미(海美) 옥중에서 순교했다. 이에 할아버지 택현(澤鉉)은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했으며, 김대건은 이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아버지 제준(濟俊)은 다시 내포로 이사하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라난 김대건은 1831년 조선교구 설정에 이어 1836년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의 방침에 따라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적합한 소년을 물색하던 P.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崔良業)·최방제(崔方濟)에 이어 선택되었다. 모방 신부는 이들에게 라틴어와 함께 성직자로서의 기본소양을 가르친 후 이들을 12월 2일 한양을 떠나 귀국길에 오른 유방제(劉方濟) 신부편에 마카오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모방 신부는 가장 늦게 선정된 그의 마음을 잘 몰라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김대건이 "앞으로 조선성교회를 위하여 몸을 바치겠다"고 굳게 맹세하여 함께 보냈다고 한다. 이들은 만주·내몽골·중국을 거쳐 8개월 만에 마카오에 도착하여 파리 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東洋經理部)에서 정식 교육을 받게 되었다. 먼저 중등과정을 마친 후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했으며, 이들 중 최방제는 1838년 병사했다.

 

 

1841년 9월 김대건은 아편전쟁을 틈타 중국과 조선에서의 이권을 위해 파견된 프랑스 군함 2척 중 1척에 동승하여 1842년 양쯔강[揚子江]에 이르렀으나 난징조약[南京條約]의 체결로 군함이 되돌아가자 중국인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만주로 향했다. 이어 1842년 12월에는 압록강을 넘어 평안도에 진입했으나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다음해 1월 만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또 1844년에는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인 페레올(Ferréo) 주교의 명으로 외국인 신부들의 조선입국을 위해 두만강을 넘어 조선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여전한 탄압의 분위기와 악화된 건강 때문에 천주교회의 수습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 채 4월 배편으로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여기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8월에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았으며, 이는 한국인 최초의 신부 탄생이었다. 10월에는 배편으로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조선으로 향하여 천신만고 끝에 충청도를 통하여 입국에 성공했다.

 

이어 그는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한양으로 잠입하여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쳤다. 1846년에는 아직 만주에 머물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 등의 입국을 위해 서해안 길을 개척하다가 6월에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었다. 옹진군 감옥을 거쳐 해주감옥에서 황해감사로부터 심문을 받고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에서 성장하고 천주교를 펴기 위해서 귀국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이후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가의 금령을 어기고 출국한 사실 및 천주교의 신부임이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몇몇 대신들의 부탁으로 세계지리의 개략을 책으로 만들고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를 번역하여 2벌의 지도를 채색하여 바치기도 했다. 이 당시 조선정부는 그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천주교 박해에 앞장서 왔던 풍양조씨의 세도가 막을 내리는 등 큰 권력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김대건 등의 옥사가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1846년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신부 3명의 처형을 따지기 위해 프랑스 함대가 충청도 홍주 앞바다에 기항하고 조선국 정대감 앞으로 된 문책서를 전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크게 놀란 조선정부는 그의 처형을 결정했고, 마침내 김대건은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시신은 교인들이 수습하여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산중에 안치되었다. 김대건은 조선최초의 천주교 신부라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열성적 전교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자세 때문에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어 많은 교회나 수도회의 주보(主保)가 되었다. 192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에는 103인 성인의 하나로 선포되었다.

*.마포구 합정동 로타리근처 한강변에 위치한 카톨릭순교성지내의 김대건신부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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