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의 모습.
북한산 단풍여인의 파안대소.
산비둘기 부부도 단풍구경에 도취된듯 합니다.
비봉방향에서 본 향로봉
비봉앞에서 본 북한산 백운대가 멀리보입니다.
향로봉의 뒷편 모습.
기자촌 방면으로 하산하던중에 멀리 족두리봉.
골쇄보에도 고운 단풍이 들었습니다.
주말에 비가 내릴것이라는 예보가 있어서 주말일정을 하루 앞당겨서 북한산을 다녀왔습니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에서 족두리봉과 향로봉 비봉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지만 이곳저곳을 돌다보니 거리상으로 꽤나 긴 등산길이었습니다. 북한산에는 이미 아름다운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고 평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풍을 감상하려고 북한산을 찾아오는 모습이었습니다. 오늘 주로 향로봉과 비봉 주변을 돌다보니 이미지도 비봉의 모습이 많이 올려졌습니다. 비봉은 역사적인 의미가 부여된 북한산의 한 봉우리입니다. 비봉의 역사적인 고찰은 아래 참조하여 보십시오. (2009년 10월 16일 북한산 비봉에서)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져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사진은 실물과 똑같이 복제한 비를 원래의 있던 자리인 북한산 비봉에 세운것임)
이미지를 클릭하여 보십시오. 예전의 신라진흥왕순수유지비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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