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 아래의 대전사 보광전.
경상북도 청송군 주왕산 대전사가는 길이 매우 혼잡하였습니다. 대전사앞 5km전방부터 수많은 광광버스와 승용차들이 길게 줄을 서 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버려서 앞으로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차에서 내려 경보수준으로 한시간 이상을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주로 주왕산 등산이 목적이었을 수많은 인파들로 대전사앞 도로가 매우 혼잡하네요.
주왕산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청송군의 문화재 자료에 의하면 672년(문무왕 12)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주왕사적에 의하면 신라 말인 892년(진성여왕 6)에 낭공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전사의 창건 동기는 절 이름, 벽화, 전설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종교적인 동기 이외에 김범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한 뜻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창건 당시는 웅장한 절이었음에 틀림없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되었다.
그후 1672년(현종 13)에 중창, 1976년에 번와 및 단청을 하였으며 1988년에 봉향각, 수선당, 회연당을 신축하였다. 또한 1995년에 명부전과 산신각을 이전, 신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기 전에는 4방 4불 3루각과 쌍탑이 있었다고 한다. 4방은 열선당, 탐진당, 수월당, 한산전이고 4불전은 보광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이며 3루각은 용화루, 범종각, 응향각이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보광전과 명부전뿐이다. 보광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양식으로 공포는 외2출목, 내2출목을 이루는데 외부에서는 양서로, 내부에서는 교두형으로 되어 있는 조선 중기 이후의 목조건축 양식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절에는 금강탑이라는 쌍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파손되어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며 일부 탑신 조각만 보광전 앞에 아루렇게나 쌓여 있다. 이 탑신 조각에는 사천왕상이 정교하게 돋을 새김된 부분이 있다. 사천왕상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인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등 사천왕을 도상화한 것이다.
사천왕상이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행한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대전사 금강탑 조각에는 도검지물의 동방신장, 장창지물의 서방신장, 삼고지물의 남방신장, 보탑지물의 북방신장이 각각 한 쌍씩 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 탑의 원래 모습은 사적 제 46호인 경주의 원원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610호인 영양군 현일동 삼층석탑과 비슷하였을 것이라 한다. 이 금강탑이 보존만 잘 되었다면 보물급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나 지금은 탑신석과 기단석으로 보이는 돌들이 대전사 마당에 굴러다니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대전사에서 나온 유물로는 금동여래입상과 금동이불병좌상이 있다. 금동여래입상은 1968년 4월 1일 절터 옆의 밭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때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모두 7점으로 높이가 5.5센티미터부터 15.2센티미터까지의 작은 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으로 분류되고 있다. 발굴당시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립대구박물관에는 금동이불병좌상도 보관, 전시되어 있는데 대좌 위에 두 개의 불상이 나란히 앉아 있다. 이 불상은 높이가 6.3cm, 아래 너비가 9.6cm의 작은 불상이며 금동여래입상과 같은 시대인 통일신라시대로 분류되고 있다. 대전사에는 이여송 장군의 친필 목판도 있다. 가로 42.5cm, 세로 24.5cm의 목판에 새겨진 것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당시 주왕산에서 승병 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대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의승도대장 사명대사 귀하
의로운 승장 사명 대사의 장도에 삼가 보냅니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불도와 선도만을 배우십니까? 지금 나라의 일이 위급하다 하오니 의승병을 모두 데리고 산을 내려오기 바랍니다.
명나라 장수 태자소부 이여송 삼가 씀- (대전사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