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인왕산 선바위(禪岩)

마 음 2013. 9. 13.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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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선바위(석불각) 앞 모습.

 

 

 

 

인왕산 선바위(석불각) 뒷 모습.

 

 

 

 

 

 

 

 

 

인왕산에서 자리를 옮겨가면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선바위.

 

 

 

요약설명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바위로 예부터 민간에서는 신령한 힘이 깃들여져 있다고 믿어온 바위다.

선바위란 이름은 두 명의 승려가 장삼(소매가 넓은 승려의 웃옷)을 입은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불린 것이다. 아들을 갖기 원하는 여인들이 기도하는 곳이라고 해서 기자암(祈子岩)이라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 조선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도성의 수호신사로 지은 사당)이 이 곳으로 옮겨 자리를 잡으면서 선바위는 더욱 신성시 되었다.

“선바위를 둘러싼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치열한 신경전”

조선 건국 초기의 일이다. 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수도로 정한 후 성곽을 쌓을 때, 개국공신 정도전과 무학대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무학은 선바위를 도성 안에 둬야 한다고 했고, 정도전은 도성 안에 선바위가 있으면 불교가 성하고 밖에 있으면 유교가 흥한다며 성 밖에 둬야 한다고 했다. 양쪽의 주장이 팽팽하여 결정을 못내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눈이 녹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태조는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를 성터로 정하였는데, 그 결과 선바위가 성밖으로 밀려나게 됐다는 일화이다.

 

상세설명

신성한 대상물이 되고 있는 바위로, 마치 중이 장삼-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중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이와같이 부르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쌓을 때 당시의 문신이었던 정도전과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로 크게 의견대립을 보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만일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문신들은 힘을 못쓰고, 성 밖에 두면 반대로 승려가 힘을 못쓰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을 못 내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눈이 녹지 않은 자리가 있어 태조는 이것을 성터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바위는 성 밖으로 밀려났다 한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있는 자연석으로서, 직접적인 신앙대상물은 아니지만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 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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