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기자능선 406봉 전망암에서 바라본 비봉과 관봉.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본 관봉과 비봉. 뒤로 응암능선. 의상능선과 문수봉 보현봉은 물론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 등이 조망된다.
관봉에서 바라본 비봉.
관봉 아래에서 바라본 비봉.
비봉 아래 산불감시초소 근처에서 올려다본 비봉.
사모바위 광장에서 바라본 비봉 관봉 406봉 방향.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가 세워져 있는 비봉은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지구 서쪽의 비봉 능선(문수봉 ~ 족두리봉(수리봉))에 중간쯤에 있는 바위봉우리로 동서남북 어디를 막론하고 오르기가 어려운 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우람한 바위봉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약 1,500여 년 전 신라 진흥왕은 이 바위봉우리에 신라의 영토임을 알리는 커다란 비석을 세웠습니다. 현재 비석의 원본은 대한민국 국보 제3호를 지정하고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전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비봉에 세워져 있는 비석은 원본 비석과 똑같은 형태의 복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봉에 세워져 있는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에 접근하고자 한다면 비봉의 북동쪽으로 오르면 그런대로 조금은 안전하게 올라가 볼 수 있는데 겨울철에는 눈과 얼음이 바위에 항상 남아있어 올라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국보 제3호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
대한민국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 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비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가 있었던 자리임을 표시하는 비석 ▲
▼ 현재 원본과 같은 모습으로 복제된 북한산신라진흥왕순수비를 세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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