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로

북한산둘레길(9구간~10구간)에서

마 음 2023. 11. 2. 17:49

 

은평한옥마을에서 바라본 북한산국립공원의 모습. 왼쪽 제일 뒤편 능선의 의 원효봉과 염초봉과 백운대. 다음 조금 가까운 능선의 의상봉과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암봉. 진관사 뒤편 가장 가까운 능선인 응봉능선의 무명봉이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다. 
 
 
  

 

북한산 둘레길 9구간(마실길)은 은평한옥마을 남쪽의 코스모스다리 앞에서부터 시작된다. 9구간의 포토포인트인 은행나무숲으로 들어가기 직전 계단길에서 본 늦가을의 단풍모습이다. 
 
 
 

 

북한산 둘레길 9구간(마실길)의 포토 포인트인 은행나무숲이다. 은행나무의 잎은 거의다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이다.
 
 
 

 
백화사 입구 여기소 마을로 들어간다.
 
 
 

 
백화사 입구에서 북한산 둘레길10구간 내시묘역길로 접어들었다. 의상봉 등산로 갈림길이다.
 
 
 

 

 

 

경천군 송금물침비(慶川君 松禁勿侵碑)의 역사와 문화
송금물침비는 북한산 둘레길 중 내시묘역길(현지점) 구간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일본과의 화평교섭에서 크게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경천군으로 봉해진 이해룡(경주이씨)의 사패지(임금이 하사한 토지)이자 그 주의상항을 알리는 비석입니다.
 
왕조시대에는 나라의 모든 토지가 왕의 것이었기에 공이 있는 신하 등에게 땅을 주거나 땅에서 나는 땔감 등의 생산물을 거두어 갈 수 있게끔 하였는데, 바로 이 비석을 통해서 사패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비석 앞면에는 "경천군에게 내려준 이 땅에(무덤에) 함부로 들어가거나 소나무를 베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그 뒷면에는 1614년 10월에 비석을 세웠다는 기록(만력 42년 1614년 갑인 10월)이 남아 있습니다.

경천군 이해룡은 한석봉과 함께 당대의 명필로서 사자관을 담당했으며, 임진왜란을 즈음하여 통신사의 일행으로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노고산 방향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앞에 숲속학교인 서울북한산초등학교인데 서울북한산초등학교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듯하였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서울북한산초등학교 안으로 들어가려니 보안요원이 막아선다. 들어갈 수 없단다. 서울북한산초등학교 교정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어린이 음악회는 아니었다. 음악회를 들어가 볼 수 없었으니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지만,
 
 
    

 
교문앞에서 보안요원에게 사진 한 장만 촬영하겠다고 하고는 서울북한산초등학교 건물과 함께 두장을 촬영하고 나왔다. 
 
 
 

 

유흥억 할아버지 공적비. 북한산초등학교는 1967년 3월 25일 개교되었는데 당시에는 산이었던 학교 터에 교실을 짓기 위해 유흥억 할아버지께서 앞장서서 동네주민들과 땅을 파고 수레를 끌며 많은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이 공적비를 세웠다는 취지이다. 
 
 
 

 
북한산 둘레길 10구간(내시묘역길) 포토 포인트 둘레교.
 
 
 

 
둘레교 앞에서 본 북한산 원효봉과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방향. 
 
 
 

 
 일반하천 창릉천. 서울시와 고양시의 경계가 된다. 
 
 
 

 

북한산성탐방안내센터에서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 둘레길 스탬프 투어를 위한 수첩을 구매(3,0000원)하고 왔던 길로 다시 걸어 들어가 입곡삼거리에서 은평역사공원길을 따라서 금암문화공원- 은평지문교- 옥란교- 구파발역- 신도고등학교- 연신내 사거리- 갈현동 원점회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