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습니다.
어제의 등산 노독으로 오늘 아침에 조금 늦잠이 든 것 같았습니다. 부랴부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07시 20분에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은 자전거를 그만두고 다리근육도 풀 겸 해서 걷기로 했습니다. 언덕고개가 2개 있기는 하지만 걸어서 35분이면 직장까지 무난하기 때문이지요. 자주 다니는 길이라서 길옆에 무엇이 있다는 것은 빤히 꿰뚫고 있지요. 5분쯤의 거리에 있는 집 대문 앞에 놓인 화분에서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피기 전의 꽃봉오리였습니다. 전에도 몇 번 다니면서 보았지만 꽃이 피기는 피는 것 같은데 한 번도 꽃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피기 전의 꽃봉오리를 보았습니다. 모양이 너무나 아름답게 생겼어요.
직장에 출근만 아니라면 몇시간 기다렸다가 꽃이 활짝 피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만 그럴 수도 없어서 우선 피기 전의 모습이라도 담아 놓으려고 허리춤에서 카메라를 꺼내어(카메라는 항상 휴대하고 다니니까)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2층에서 어떤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저씨 거기서 뭐하세요"하는 소리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어 2층의 아주머니를 겸연쩍게 올려 보면서 "여기 꽃이 예쁘기에 사진 한 장 찍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저씨 꽃을 되게 좋아하시나 보다" 하시데요. 그래서 저도 "예 꽃을 좋아합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출근시간이 자꾸만 지체되는 게 여간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저한테 한마디를 더 하시데요. "아저씨 그 꽃이 활짝피면 아주 예뻐요. 조금 있으면 필텐데... 하시더군요. 하지만 두세 시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인지라 아쉽더라고요. 다음에 활짝 핀 꽃을 볼 때가 있겠지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데...
천사의 목소리가 들리데요."아저씨 제가 그거 몇 포기 드릴까요"하는 소리요.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사실 저는 모르는 사람한테 이런 거 쉽게 나누어 달라고 못하거든요. 동네 사람이면서도 만나는 일이 없으니 남이나 마찬가지거든요. 그 아주머니도 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저도 그냥 지나쳤으므로 모르는 형편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몇포기 나누어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요. "아이고 몇 포기 나누어 주시면 너무나 고맙지요. 감사합니다"하고 머리를 숙였습니다. 5분쯤 지나서 대문이 열리고 아주머니께서 비닐주머니에 싸 주시는 것을 받아 들고는 다시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이게 무슨 꽃이냐고 물었더니 '란' 종류라고만 알고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받아들고 사무실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금 집으로 달렸습니다. 집에 와서 빈 화분하나를 꺼내어 흙을 준비하고 정성껏 심어놓고 물을 주면서 잘 자라서 우리 집에서 예쁜 꽃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시간이 꽤 지나있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은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그까짓 거 지각 좀 하면 어때, 남모르게 지내던 이웃으로부터 꽃을 얻고 인심도 얻었는데....
참 세상은 아직도 살 만한 세상입니다.
내가 이웃에게 문을 닫고 살아온 것이 부끄러울뿐이지요.
2006년 10월 02일 아침에 파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