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내 어릴 적에 2

마 음 2006. 7. 31. 21:50

 

내 어릴 적에!

오늘이 칠월칠석(七月七夕)이라고 해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번, 오작교(까마귀가 서로 몸을 맞대어 놓았다고 하는 전설속의 다리)를 건너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날입니다. 나는 오늘 견우성과 직녀성의 사랑예기를 하려는 게 아니고 이즈음해서 먼 옛날 고향에서 연례행사처럼 행해졌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은 석라동이라는 큰 마을 중에서도 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공수동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이었습니다. 최 씨네가 3가구 이 씨네가 1가구 그리고 우리를 포함해서 5가구가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내가 삼기국민학교(현 삼기초등학교)에 다니기 직전까지는 1가구가 더 있었으나 이 사람들이 이사를 간 이후에는 집이 폐가가 되어 이후로는 5가구가 유일하게 이웃사촌이 되어 아기자기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농촌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한 가운데에는 공동우물이 하나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우물로써 5가구 약 40여명이 식수와 허드렛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우물물이 참으로 맛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땅을 6~7미터 정도 깊이로 파서 만든 우물로써 그리 크지도 않고 또한 그리 깊지도 않았지마는 사시사철 물이 마를 줄을 몰랐습니다. 장마철이라고 해서 넘치는 것도 아니고 봄철 가뭄이 들면 물이 조금 부족하기는 했었지만 물이 마르는 일이 없이 늘 깨끗한 물이 솟아 올라와서 우리 동네 40여명의 생명수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물지게를 메고 가서 두레박을 이용하여 밤새껏 정화될 데로 정화된 물을 퍼 올려서 한 모금 들여 마실 때에는 가슴속이 시원한 것이 상쾌하기가 이를 데 없이 좋았습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는 집에서는 이 물을 떠다가 장독대위에 올려놓고 소원을 빌기도 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이 물이 정화수(井華水)가 되는 샘입니다. 전혀 오염되지 않은 지하에서 솟아오른 청정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 물을 길어다가 집안 부엌에 있는 커다란 물동이에 가득하게 채워놓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수도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커다란 물동이에 채워놓고는 수시로 이용하였던 것입니다. 물을 긷는 일은 대부분이 여자들이 했지만 우리 집은 남자들만 우글거리고 여자는 나이 어린 여동생과 어머니뿐이어서 형을 비롯하여 내가 물을 길러 다녔는데 물지게 양쪽 고리에 물이 가득한 물동이 두 개를 걸치고 일어나려면 처음에는 기우뚱거리다가 넘어지기도 하면서 물을 많이 엎지르게 되는데 이것이 차츰차츰 요령이 생기게 되면 물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도 살랑살랑 춤추듯이 뛰면서 걸어도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집에까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오늘처럼 이렇게 무더위가 계속될 때에는 그 우물에 달려가서 두레박으로 시원한 물을 퍼 올려 목물을 치고 나면은 언제 땀이 났었는가 싶게도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하고 상쾌했었습니다. 한 여름이면 온종일 논밭에 나가서 일하느라고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어른들이 몸들을 씻기 위해서 우물가에 모여들었습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공중도덕이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시설물들은 지저분하기가 일쑤인데도 우리 마을의 유일한 공동시설물인 이 우물가에는 항상 청결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와 나 할 것 없이 내 것처럼 아끼고 관리하는 순수한 마음들이 생활화되어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른 아침나절에 우물가에 동네사람들이 모이면 밤사이의 안녕히 보이고 저녁때에 모이면 그 날 하루가 안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런 생활의 모임 터이기도 하기에 너와 내가 없이 청결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입니다. 물은 우리들의 생명의 원천이라고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질병이 우리가 먹는 물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 우물은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 공동우물은 1년에 한 번씩은 마을어른들을 비롯하여 청년들이 모두 모여 우물대청소를 하게 되지요. 그 우물 청소하는 날이 바로 오늘 견우성과 직녀성이 까마귀들이 서로 모여 다리를 만든 오작교에서 1년에 한 번씩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7월7석 날(음력7월7일)에 합니다.

이때에는 여름철 농사도 한가하여지는 때 이기도하고 또한 여름철 내내 자라난 잡풀과 장마 등 여러 가지로 우물주변이 청결을 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가을일이 시작되고 하다보면 바빠지기 때문에 음력으로 7월초 그 중에서도 좋은 날로 여겨지는 오늘(칠월칠석날) 하는 것으로 압니다. 우물청소를 할 때에는 집집마다 장정들이 모두들 나와서 먼저 우물주변의 잡초 같은 것을 베어내고 배수로를 정리하고 일그러진 빨래터의 돌들도 잘 정리한 다음에 우물 안에 있는 물을 전부 퍼내는데 그 퍼내는 물로 작업하느라고 더럽혀진 돌들도 깨끗이 씻어내고 우물물이 바닥이 나면 우물 속으로 사람이 조심스럽게 들어가서 우물바닥에 깔려있는 오물 같은 것을 전부 씻어 냅니다. 그리고는 우물입구를 보릿짚이나 밀짚으로 만든 깨끗하고 넓은 거적으로 덮어두고는 우물주변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내가 어릴 적에 본 우리 동네 우물청소를 하는 날은 우리 마을의 축제나 마찬가지여서 돼지도 잡고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온 동네사람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서 즐거운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이른 봄부터 시작된 농사일에 지칠 데로 지친 농부들의 몸 보양을 겸하는 그런 잔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안타깝게도 기름진 고깃국을 먹고 제대로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배탈설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리고는 저녁때가 되면 꽹과리 장구 징 북 등 풍물놀이기구를 가지고 나와서 마을의 우물들을 찾아가서는 신나게 풍물을 치면서 제사를 지냅니다. 우물에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특별히 정해진 것은 아니고 그 해에 상(喪)을 당했거나 혼인을 정한 집안이 아니면 서로 의견조율을 통해서 적임자를 정한 다음에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드린 다음부터 우물물을 길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 년 내내 맑고 깨끗한 물이 풍부하게 나오고 이 우물물을 먹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요즘은 산업의 발달로 인해서 지하수까지 오염되어서 식수로 사용하기가 부적합하다고 하여 수백만 원이나 하는 정수기를 설치하여 물을 정수 하여서 먹는 가정이 많고 약수터에는 약수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장사진을 이루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어릴 적에 만해도 이 세상이 얼마나 깨끗하였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에는 그렇게 살아오면서 우물물을 먹고 탈이 났다는 에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문명의 발달과 생활의 발전으로 자가 우물을 파는 가정이 하나 둘씩 늘어나게 되었고 우리 집에서도 내 나이가 17세쯤에 형님께서는 아들들만 득실거리는 우리 집에 어머님께서 우물에 가셔서 빨래며 생활에 필요한 물을 긷고 하시는 것이 힘이 드신다고 큰맘 먹고 집안의 마당 한쪽에다 자가 펌프를 설치하게 되어 되었습니다. 펌프질을 하여서 땅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물은 그야말로 깨끗하고 시원하고 물맛도 참 좋았었습니다. 사시사철 깨끗한 물을 마음대로 쓸 수가 있어서 좋았고요. 물론 물지게를 지고 다니며 물을 길어오던 수고를 덜 수가 있었지마는 공동우물가에서 나누던 이웃 간의 정겨움은 조금씩 사라지게 되어서 아쉬운 마음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공동우물은 사용하지를 않아서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물웅덩이에 불과하며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1970년대 초에 우리 마을에도 상수도가 설치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곳 어떤 농촌의 가정에도 상수도 시설이 오래 전에 설치되어 생활의 편리함이 도시와 동등하게 된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취사를 하거나 난방을 하는데 필요한 연료를 논바닥 밑에서 캐어낸 토탄이나(토탄이란 것은 석탄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써 아주 먼 옛날 울창하던 숲이 땅속에 묻혀 썩은 것인데 물기가 많아서 햇볕에 잘 말려서 풀무질을 하면서 태우면 화력이 아주 좋은 연료였음) 산에 가서 솔잎 등 낙엽을 긁어오거나 볏짚 단을 아궁이에 태워 메케한 냄새를 맡으며 하던 것을 이제는 프로판 가스를 이용하여 취사를 하고  기름보일러를 설치하여 냉온수를 마음대로 사용하고 겨울철 집안의 난방을 대체하였으며 수세식 화장실이 안방 옆에 설치되어있고 문화시설로는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 전화를 비롯하여 가전제품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요즘은 각자 휴대하고 다니는 개인용 휴대전화기로 인하여 가정용 전화기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지간한 가정에서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초고속 인터넷 망에 연결되어 있어서 도시와 농촌은 물론이고 세계가 이웃이 되다시피 하였으니 상전벽해가 따로 없습니다.

또한 농촌가정의 절반정도가 자가용 승용차 내지는 농업용 차량을 한대씩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한 30여 년의 세월 속에 참으로 많이도 발전했다고 아니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활의 발전으로 인하여 삶이 풍족하고 편리하게는 되었으나 잃은 것도 많으니 이웃 간의 따뜻한 정이 메말랐고 아침이슬처럼 깨끗하고 아름답던 자연환경이 많이도 망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청정수처럼 깨끗하여 약수라고 하였었던 지하수 우물물도 이제는 많이 오염되어서 함부로 마실 수가 없다고 하니 잃은 것치고는 너무 큰 것을 잃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물이 오염되어 함부로 마실 수가 없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물 쓰듯 한다.”고 합니다만 이제는 물을 물 쓰듯 할 수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이 있으되 먹을 수가 없는 더러운 물이라면 인간의 생명도 끝이 나는 것이 아닐까요. 유엔은 이미 우리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지정했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물을 너무나 소홀하게 다루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가 없지요. 우리의 생명수가 되는 지하수를 아끼고 보존하는데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물을 오염시키고 토양을 오염시켜서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면 인간의 종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물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을까 생각되어지니까요. 하여간에 나는 태어나서부터 소년기를 거처 청년기에 이르러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아 서울로 오기까지를 요즘의 약수보다도 더 좋은 이 우물물을 먹으면서 자라서인지 지금까지 별다른 질병 없이 건강한 것을 보면 이 우물물이 생명수 그 자체가 아니었나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지금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우물물은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방치된 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며 오늘 칠월칠석을 맞고 보니 옛 우리 마을의 우물물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주 오래된 먼 옛날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2006년 07월 31일 파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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