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내 어릴 적에 3

마 음 2006. 8. 10. 13:41

 

내 어릴 적에!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에 추억이 제일 많은 곳은 아마도 집 앞동산에 자리 잡고 있는 수령이 수백 년이나 된 왕소나무일 것입니다. 유난히도 커다란 이 소나무는 밑 둥의 굵기가 어른 둘이서 양팔을 벌려야만 겨우 맞댈 수 있는 크기여서 우리 동네의 수호신처럼 그 늠름함을 자랑하며 서 있는 소나무였습니다. 동산에는 어린 소나무로 시작해서 3~4미터 높이의 소나무가 많았지만 유달리 큰 이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우리들은 이 소나무를 “왕소나무”라고 불렀습니다.
  

이 왕 소나무는 특이하게도 위로 곧게 자란 것이 아니고 지상에서 2미터도 채 안 되는 정도에서 옆으로 가지가 3개로 나뉘고 여기에서 또 가지가 옆으로 돋고 하여 360도 원형을 이루고 있는 나무여서 마치 커다란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왕 소나무 아래에는 항상 그늘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철 학교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너나없이 이곳으로 모여서 더위를 식히며 놀던 곳이었습니다. 요즘 같은 여름 방학 때는 우리들은 이 왕 소나무에서 해가는 줄 모르고 지냈습니다. 봄이면 이 왕 소나무에서 풍기는 진한 솔가루향기에 취하고 여름이면 수많은 우리 어린 동심들을 불러 모아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이 왕 소나무의 수많은 가지 사이사이로 원숭이처럼 옮겨 다니면서 해 가는 줄 모르게 놀았습니다. 또 높은 나뭇가지에 기다란 그네를 메어놓고 그야말로 새처럼 훠이훠이 하늘을 날아보는 듯 즐거움이 가득하였었습니다.
  

나도 어느 어린이 못지않게 나무타기를 좋아했습니다. 이 왕소나무에 올라가 그늘이 많으면서도 널찍한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은 체한다든지 공부를 하는 척한다든지 능청을 많이 떨기도 했었으니까요. 이런 일은 나뿐만이 아니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방학숙제를 한다고 이 왕 소나무 위에 올라와서 묘기 부리듯이 넓은 나뭇가지를 타고 앉아서 방학숙제를 하기도 하였었습니다. 어느 한 여름 방학 때에는 미술숙제로 이 왕소나무를 내 딴에는 잘 그린다고 그렸는데 내가 그림솜씨가 없었는지 재미를 보지 못했었던 기억도 새롭네요. 또한 이 왕소나무 주변에는 수풀이 많아서 꿩이나 산새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새끼를 치는데 철없는 우리들은 알을 꺼내다가 대파 속에 까 넣고 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갖가지 곤충들이 많으니 곤충을 잡아서 곤충채집 숙제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자연 생태계파괴자라고 해야 하나……
  

이 왕소나무에서 놀다가 어느 한 아이가 잠자리 잡으러 가자하면 모두 내려와서 잠자리를 잡아서 실로 다리를 묶어 날리고 다니면서 낄낄대고 놀았습니다. 이 왕소나무에서 놀다가 내려와 동네 앞 개울가에서 미역을 감고 놀면서도 하하하 하면서 낄낄대고 놀았습니다. 왕소나무위에 못 오르는 아이는 정말로 애기 취급받는 갓난이 빼고는 다 올라가서 놀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편안했고 그러다 보니 웬만하면 남자애 여자애 가리지 않고 모두가 원숭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온 종일을 놀다가 해가 저물어서 집에 들어가 밥이든 죽이든 저녁밥을 먹고 나면 우리들은 또 이 왕소나무아래에 모두 모여서 재재거렸습니다. 어둑어둑한 밤하늘을 노란 불빛을 내면서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서 호박꽃잎 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며 놀고 숨바꼭질하며 놀고, 밀짚으로 만든 자리를 들고 나와서 깔고 누워서 밤하늘에 가득히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면서 내 별 네 별을 속삭이면서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어머님의 부름을 받고서야 집으로 가면서도 서로가 아쉬운 마음으로 헤어지지만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서로가 웃으면서 집으로 향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름방학이면 우리들은 밤낮없이 많은 시간을 이 왕소나무 주변에서 보냈습니다. 이 왕소나무에 올라가면 그냥 즐거웠습니다. 솔잎냄새도 좋고 송진 냄새도 좋고 시원해서 좋고 아슬아슬 떨어질까 봐 긴장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만날 약속장소도 이 왕소나무로 정하면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5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 왕소나무가 병이 들어서 그 많던 나뭇가지가 하나씩 하나씩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의 그 개구쟁이 아이들도 지금은 모두 흰 머리카락을 날리는 장년기에 이르렀으니 말없이 흐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어이합니까.

                                   

                                               2006년 08월 10일 파란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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