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세계

주몽 - 동명성왕

마 음 2007. 3. 9. 23:57

MBC 드라마 "주몽"이 끝맺음을 했다.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이 했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면 재미가 있다. 드라마를 가지고 너무 사실운운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파란마음은 "주몽"을 재미있게 보았다. 이제는 "대조영"밖에 볼게 없나보다. 일일극은 시청을 않으니까.

 

드라마 "주몽"의 주요인물들.  








 

주몽-동명성왕

 

고구려의 시조(BC 37~19 재위).


성은 고(高). 이름은 주몽(朱蒙)·추모(皺牟)·상해(象解)·추몽(皺蒙)·중모(中牟)·중모(仲牟)·도모(都牟) 등으로 기록되어 전한다. 〈삼국사기〉·〈삼국유사〉·〈제왕운기〉·〈동국이상국집〉·〈광개토왕릉비문〉 등의 관련기사에 의하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정을 통하고 버림받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가 태백산(太白山) 우발수(優渤水)에서 북부여(北扶餘)의 왕 금와(金蛙)를 만나 그의 궁중에 유폐되어 있었다. 어느 날 해모수가 햇빛이 되어 나타나 유화에게 잉태시켜 알을 낳게 했는데, 여기서 태어난 것이 주몽(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쏜다'는 뜻)이라고 전해진다. 총명하고 활을 잘 쏘아 촉망받던 중 대소(帶素) 등 금와왕의 7명의 왕자가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어머니의 권고로 마리(摩離)·오이(烏伊)·협보(陝父) 등과 함께 화를 피해 남쪽으로 도망갔다.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佳江) 유역의 홀본(忽本 : 懷仁·桓仁)에 이르러 땅이 비옥하고 산천이 험준한 것을 보고 도읍으로 정했다.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성을 고라 하니, 대략 BC 37년에 해당된다. 당시 동가강 유역에는 여러 성읍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우세한 것이 비류국(沸流國 : 일명 多勿國)이었다. 비류국의 지배층도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주몽집단보다 먼저 이동해 정착한 집단이었다.


주몽은 BC 36년 비류국의 왕인 송양(松讓)을 굴복시켜 합병했으며, BC 34년에는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 이듬해에는 행인국(荇人國)을 정복하고, 다시 BC 28년에는 북옥저(北沃沮)를 멸망시키는 등 여러 성읍국가들 사이에 연맹국가(聯盟國家)로의 통합운동을 전개, 국가기틀을 마련해갔다. BC 19년 4월 부여로부터 도망쳐온 아들 유리(類利)를 태자로 삼았다. 그해 9월에 죽자 용산(龍山)에서 장사지내고,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다


동명왕신화[東明王神話] 


고구려 건국시조인 동명왕에 관한 신화(→ 건국신화).


〈고구려건국신화〉 또는 동명왕의 이름을 따 〈주몽신화 朱蒙神話〉라고도 한다. 동명왕에 관한 내용은 국내 문헌에서는 〈광개토왕릉비문〉 서두,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청장관전서〉 등에 나타나고 있으며, 중국 문헌 중에는 왕충의 〈논형 論衡〉·〈양서 梁書〉·〈위서 魏書〉, 〈주서 周書〉·〈수사 隋史〉·〈북사 北史〉·〈통전 通典〉 등에도 전하는데, 자료에 따라 내용에 차이가 있다. 동명왕신화라 하면 흔히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을 제일로 치는데, 내용면에서 이것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동명왕편〉 등에 공통되는 내용을 추출하여, 이 신화의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몽의 아버지는 천제인 해모수였는데, 성북 청하에서 놀고 있는 하백의 딸 유화와 인연을 맺고 하늘로 돌아간다. 이 일로 하여 유화는 하백에게 쫓겨나 우발수에 있다가 금와왕에게 구출되고, 후에 해[日]에 잉태되어 1개의 알을 낳는데 이것이 주몽이다. 알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마구간과 깊은 산에 버려지지만 짐승들의 보호를 받고 태어나 어머니에게서 양육된다.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렸는데, 부여 왕의 태자들이 그의 능력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유화는 주몽에게 남쪽으로 가 뜻있는 일을 하라고 한다. 주몽은 계략을 써서 왕실의 준마를 얻고, 세 현우(賢友)가 함께 길을 떠나 엄체에 이르렀을 때, 그를 도우러 나타난 물고기와 자라들이 만든 다리를 밟고 강을 건너 추격병을 피한다. 주몽은 유화가 보낸 보리씨를 비둘기로부터 받고, 남쪽으로 내려와 경개가 좋은 곳에 왕도를 정하고 나라이름을 고구려라 한다. 비류국 송양왕과의 언변 및 활쏘기 시합에서 크게 이겨 송양왕의 영토를 빼앗고, 성곽과 궁실을 크게 짓는다. 재위 19년에는 부여에서 온 아들 유리와 부러진 두 조각의 칼을 하나로 맞춰본 뒤 그를 자식으로 인정하고 태자로 삼는다. 죽어 용산에 장사되었는데, 시호를 동명성왕이라 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평양 대동강가의 조천석(朝天石)에 있는 말발자국이 바로 동명왕이 타던 말의 발자국이라는 전설이 실려 있다. 동명왕이 아침마다 하늘로부터 내려와 구제궁의 기린굴을 통해 이 바위를 밟고 하늘로 돌아갔기에 여기에 그 발자국이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명왕신화〉는 고구려의 건국에 관한 여러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하다. 또한 뛰어난 한 인물이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국가를 세우는 과정을 투쟁적·영웅적으로 그리고 있는 서사물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문학사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갖고 있다. 〈동명왕신화〉는 바로 우리 민족의 영웅서사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대서사물에는 3대기를 서술하는 특징, 심부담(尋父譚 : 아버지 없는 가운데 태어난 아이가 이후 성장하여 아버지를 찾는 모티프를 담고 있는 이야기)적 요소, '영웅의 일생'[고귀입공(立功)-죽음(승천)]이라는 서사전통이 있는데, 〈동명왕신화〉는 이런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신화는 우리 서사물의 전통을 마련하는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신화에는 또한 난생신화적 요소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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