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신나간 욕심쟁이 늙은이에 의한 방화로 소실되어 버린 남대문(숭례문)을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가림막안에서 많은 복원관련자들이 땀을 흘리면서 복원작업에 열중하고 있을것입니다. 여기에서 남대문(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기 이전으로 돌아가 남대문의 모습을 한번 다시보는 것도 좋을것같습니다.
방화로 인하여 소실되기 이전의 남대문과 남대문 방화범 (2008년 02월 15일)▼
남대문(숭례문)
국보 제1호.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48년(세종 30) 개축했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에 의해 남문인 숭례문이 정문이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해 편액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졌다. 이는 서울 남쪽에 있는 조산(祖山)인 관악산이 북쪽의 조산인 북한산보다 높고 산의 모양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한 것이며, 오행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숭례문이라 이름했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에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인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고 사래 끝에 토수(吐首)를 달았다.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두고, 양성한 용마루에는 취두(鷲頭)를 두었다. 2층인 이 문의 구조는 위층의 4모서리 기둥이 아래층까지 내려와 견고하게 결구되었으며, 위층 중앙에는 4개의 고주를 두었다. 다포계 형식의 공포를 얹은 이 문의 위층은 외삼출목, 아래층은 외이출목으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포계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초기 건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1962년 해체복원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은 당시의 건축생산체계와 장인조직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하는 성문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 초기 다포계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백과사전에서)
숭례문 화재로 소실
2008년 02월 09일 저녁 20시 50분쯤에 60대의 방화범에 의해서 화재가 발생하여 최신 소방장비를 갖춘 서울소방청의 대규모 진화작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익일인 10일 새벽 02시에 겨우 불길을 잡았는데 국보제1호 숭례문은 처참한 모습으로 전소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요 만백성의 자존심처럼 여겨지던 국보제1호 숭례문이 짧은 시간에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까지 인간의 모습이 악랄할 수가 있는지 나 자신을 한 번 되돌아 본다. 다음날 이명박 대통령당선자는 빠른시일내에 국민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한다는 말을하여 국민들로부터 매서운 질타와 함께 국민들의 분노를 더하였다. 또한 국민들의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고위직 관료들은 서둘러 숭례문을 3년이면 복원을 완료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관리책임을 회석하려고 애를 썼다.
나의 견해
숭례문은 복원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절대 서둘러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숭례문은 드라마 세트장 만들듯이 할 수는 없지않은가. 심사숙고 철저한 고증과 준비로 5년후라도 좋고 10년후라도 좋다. 준비를 완벽하게 완료한 상태에서 복원작업에 들어가야지 시작하면서 준비하면서 이것은 죽도 밥도 안 된다. 최소한 지금 복원중에 있는 경복궁 광화문의 복원이 완료된 상태를 보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해에 국보제11호인 익산미륵사지석탑의 복원현장을 가 보았었다. 그 곳에 국보제11호는 없었다. 해체되여 잔해들을 뜰에 늘어 놓았던것을 보왔다. 듣기로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단다. 복원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흔적도 없었던 동편에 동탑을 새로운 재질로 복원하여 세웠는데 멀리서보니 늠늠해 보이기는 한데 가까이서 보니 영 아니다. 최고의 기술과 초현대식 장비를 동원하여 복원하였을것인데 왜 이렇게 허술해 보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은 뻔하다, 서둘러서 시작하고 서둘러서 끝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미진하다면 시간을 더하여 과감하게 교정을 해야 하는데도 그냥 데충대충하는 그런 마음으로 일을 했기 때문이다. 복원에 참여하신분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용서하기를 바란다.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까. 돌로 만드는 복원도 이렇거늘 하물며 살아있는 나무를 베어다 천년을 견디어 낼 숭례문을 3년이내에 복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민속촌의 기와집에 불과할것이다. 숭례문 복원은 꼭 해야하지만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한가지 주문한다면 숭례문 복원작업 준비가 완료될 때까지는 가림막을 없애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도 하나의 좋은 교훈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림막으로는 방화로 인해서 없어진 숭례문을 가릴 수는 없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울타리 정도로 충분하다.
남대문(숭례문) 방화범의 재판.
20XX년 XX월 XX일 대한민국 대법원법정에서는 헌법이 제정된 이후 전무후무한 재판 판결문이 나왔다.
2008년 02월 09일 20시 50분 대한민국 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에 이상한 징후가 포착되었다. 숭례문 2층 누각내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택시기사의 신속한 신고로 수 십대의 최신식 소방차가 출동 화재진압을 펼친 끝에 불길이 잡힌듯하여 많은 국민들이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모습도 잠간, 불길은 더욱 더 거세게 숭례문을 휘감으며 타올랐고 몇 시간의 시간이 지난 뒤 2008년 02월 10일 02시에는 웅장하던 숭례문의 모습은 처참한 몰골의 잿더미로 변했고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분노와 허탈에 치를 떨어야 했었다. 꿈에라도 있어서는 안 될 국보 제1호 숭례문의 방화를 보게 되었고, 최신식 장비를 갖춘 수도 서울의 소방방제의 허점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찌 이런 일이......
방화범이 검거되었다. 숭례문의 방화범은 놀랍게도 우리의 적대국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68년을 이 땅에서 발붙이고 잘 살아온 채XX 노인이었다. 이제 죽는다 해도 그리 서운하지 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왜 국보에 방화를 했을까, 그것은 바로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 성서에 욕심이 자라면 죄를 낳는다고 했는데... 자신이 살고 있던 집이 도시계획에 의해서 도로로 편입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보상을 해 주었다는 것이 불만이었다고 한다. 최근들어 도시의 주택정비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보상을 노리는 알박이가 성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집이 자연스러운 알박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는 욕심을 내게 된 것 같다. 들리는 말로는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4배나 더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러한 전무후무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숭례문은 복원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철면피로다. 이렇게 방화를 해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면 숭례문 복원은 자신이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2xxx년 xx월 xx일 대법원 제1법정에서는 국보 제1호 숭례문방화사건에 대한 마지막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방청석에는 각국에서 나온 기자들과 수많은 우리국민들이 운집해 있었지만 분위기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1심 2심에서 보여주던 웅성거림도 고함도 야유도 없었다. 잠시 후 교도관들의 호위속에 방화범이 들어와 죄수석에 앉고 이어서 법관들이 들어와 좌정했다. 방청석은 여전히 찬물을 끼 얹은 듯 조용하고 엄숙하였다. 법관이 선고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국보 제1호 숭례문 방화범 채XX 징역 612년을 선고함”
기자들의 카메라 후레쉬가 불을 토했으나 방청석의 우리국민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본론으로 돌아가 서울성곽 둘러보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남대문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남산공원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잠시후에는 우측으로 서울역고가도로 저편에 서울역이 내려다 보입니다. 반대편으로는 남대문시장과 명동 방향입니다. 소울역고가도로도 철거예정인데 시기는 언제쯤일지 모르겠는데 편리하다고 이러한 고가도로 많이 설치하였다가 사실상은 교통흐름을 방해하고 미관을 해친다고 많이 철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고가도로가 청게천을 복개하고 그위에 청계고가도로를 설치하였었는데 이명박 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시절에 청계고가도를 철거하고 청계천을 복원하였는데 경관이 살아나고 주변 생활환경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복원된 청계천은 관광명소가 되어 서울사람들보다 지방사람들이나 외국인 광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홍제고가도로도 최근에 철거를 하였는데 교통흐름도 좋고 확트인 넓은 교차로를 보면 마음마져 시원해지는 기분입니다.
서울역앞 흴튼호탤 뒷편으로 서울성곽이 일부구간 복원되어 있는 모습을 다시 보게됩니다. 성곽옆으로 남대문방향에서 용산구 후암동 방면으로 넘어가는 도로의 인도가 형성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위의 같은 구간의 성밖은 이처럼 보이는군요. 성벽 높이가 꽤나 높습니다. 만약 성위에서 장남치다가 성박으로 떨어지면 살아남기 어려울듯합니다.
남산공원의 서울성곽이 훼손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 저곳으로 올라가야 할것같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오후업무를 시작하기전에 주변 사람들이 남산공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서울성곽을 비롯하여 백범 김구선생 광장 주변에서도 새로운 건물을 짓고 정비하느라고 산책로가 통제된 곳이 여러군데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백범광장으로 진입이 통제되어 다시금 내려와 남산순환도로 인도를 이용하여 남산도서관앞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은 조금 불편해도 잘 정비된 남산공원을 기대합니다.
김유신장군 동상.
처름 올라가던 남산공원 표지가 잇던 입구로 내려오면서 올려다본 서울성곽 복원된 모습과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방향.
오르막길을 따라 남산도서관 건물옆 계단을 올라오면 안중근의사 기념관과 그분의 얼을 추억할 수 있는 조형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동상.
견리사의 견위수명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어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씀이 명언중의 명언입니다.
남산공원 분수대앞에서 올려다본 남산과 남산타워. 님산케이블카도 운행중이고......
남산도서관.
용산 방향.
남산공원에서 팔각정으로 오르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힘차보입니다. 남산숲속은 초창기에 축성된 성곽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남산공원 분수대. 도서관 방향에서 남산을 올려다 보았을때 케이블카가 보였는데 이곳 잠두봉에 올라오면 케이블카가 손에 잡힐듯 가까이에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 전망대에 올라서면 서울의 심장부 모습이 훤히 내려다 보입니다.
안산. 인왕산 방향.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방향.
남산도서관 방향으로 뒤로는 용산 마포 방향.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서 내려다본 서울 중심가의 모습들입니다. 멀리 안산을 비롯하여 인왕산. 북악산. 북한산 등이 서울을 포근하에 에워싸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가 손에 잡힐듯한데 노오란 지붕의 건물은 학생들의 교복색깔도 노오란 색의 리라초등학교입니다.
포토아일랜드에서 커피도 한잔 타 마시면서 한참을 쉬었다가 남산 팔각정을 향해 아쉬운 발길을 돌려봅니다.
잘 정비된 남산팔각정 오르는길과 서울성곽. 평일이라서 관광객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외국인관광객들은 대형차량을 이용하고 시민들은 남산공원행 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도로가 있는 국립중앙극장 방면으로 올라오기 때문일것입니다.
쉼터. 아주 오래전 1960년에 이곳 쉼터 근처에 아주 커다란 이승만대통령 동상이 서 있었는데 4.19 의거로 철거되었지요. 제가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왔었는데 그때에 본 동상의 모습은 이승만대통령이 두루마리를 펼쳐들 글을 읽어내려가는 그런 모습의 동상이었음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계단이 많아서 오르기가 조금은 힘든 그런곳입니다. 팔각정 아직 멀었나~▲
팔각정으로 오르다가 뒤돌아본 계단과 서울성곽.
남산케이블카 종착지점 건물이 보이는 것을 보니 팔각정도 멀지 않은듯합니다.
다시 한번 숨고르기를 하면서 뒤를 돌아봅니다. 저 많은 계단을 올라오려니 숨이 차네요.
드디어 케이블카 건물앞까지 도착. 봉수대와 남산 서울타워가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드디어 남산팔각정에 다다랐습니다. 제일 먼저 봉수대가 반겨주네요.
남산 봉수대. 다섯개의 화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봉수대는 옛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 불을 피우고 연기나 불빛으로 멀리있는 친구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통신수단이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남산공원의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아마도 이 사랑의 자물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많은 연인들이 서로의 변치않을 사랑을 약속하는 의미로 두개의 자물통을 서로 얽어 잠그고는 다시는 그 누그도 열 수 없도록 열쇠를 멀리 남산 숲속으로 던져 버린답니다.
한남동 방향으로 작은 봉우리 위에 통신탑이 서 있는데 이곳은 군부대 통신시설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곳입니다. 서울성곽길을 탐방하는데 남산팔각정에서 국립극장 방향으로 내려와 저기 통신시설 아래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서 조금 내려가다가 갈림길에서 우측 나무계단 방향으로 서울성곽길 안내표지가 있습니다. 오르고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많은데 서울성곽길 탐사를 위해서 새로 조성한 것입니다. 다음편에서 나무계단의 모습과 서울성괵을 볼 수 있을것입니다.
이곳 남산팔각정에서 늦은 점심식사도 마치고 오랫동안 쉬었으니 이제는 다음 코스를 위해서 발걸음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다음편에서...
서울 성곽길 Seoul Fortress Trail
서울의 내사산(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을 잇고 4대문(숙정문.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 터(서대문))과 4소문(혜화문.광희문.소의문 터. 창의문)을 지나는 21km의 성곽길은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하며 마음으로 느끼는 역사.문화탐방로 입니다.
'역사유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성곽 둘러보기7 (성곽마루 정자~광희문~동대문) (0) | 2012.03.16 |
---|---|
서울성곽 둘러보기6 (남산 팔각정~국립극장~성곽마루 정자) (0) | 2012.03.16 |
서울성곽 둘러보기4 (인왕산~남대문(숭례문) (0) | 2012.03.15 |
서울성곽 둘러보기3 (창의문~인왕산~무악재역) (0) | 2012.03.13 |
서울성곽 둘러보기2 (혜화문~숙정문~백악산~창의문) (0) | 2012.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