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통일아! 평화야! 철원아!
동지섣달 꽃본듯이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군의 추가령 구조곡 동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르면서 평강과 철원을 남류하고 포천시의 경계를 따라 남서류하다가 연천 도감포에서 임진강과 합수한다. 한탄강은 약 27만 년 전 북한의 강원도 평강 남서쪽 3㎞ 지점 오리산에서 최소한 11번의 화산 폭발로 분출된 용암이 남쪽으로 흘러 옛 한탄강의 포천과 연천 지역을 거쳐 임진강 하류 파주 율곡리까지 95㎞, 총 면적 641㎢를 뒤덮어 용암 평원을 형성하였다.
이후 용암 대지가 식으면서 4~8각 기둥으로 굳어졌고, 4~8각 기둥 위에 비가 내리면서 한가운데를 침식해 깎아 내리거나 기반암인 화강암이나 편마암과의 약한 경계를 따라 활발하게 침식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용암 대지 한가운데가 침식되어 양쪽 절벽이 수직 절벽인 협곡이 만들어져서 현재의 한탄강이 생겨났다. 한탄강은 성분이 상이한 암석 경계면을 따라 침식되어 화강암 지역은 완경사, 현무암 지역은 급경사인 비대칭의 협곡이 형성되었다.
한탄강은 추가령 현무암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현무암 협곡으로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신생대까지의 다양한 지질 지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상 절리가 곳곳에 분포하여 관광지로서 뛰어난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한탄강 대교천 현무암 협곡은 한탄강의 여러 계곡 중에서도 드물게 하천의 바닥과 양쪽 절벽 모두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천연 기념물 제436호로 지정되었다.
한탄강에서 서식하는 어류는 2, 3급수에 서식하는 피라미, 갈겨니, 돌고기 등이 우점하고 있으며 멸종 위기종인 목납자루가 출현되기도 한다. 그리고 겨울철 기러기류, 두루미류의 월동지로 이용되며, 평야 지대에서는 쇠기러기, 황조롱이, 말똥가리 등이 출현한다. 포유류는 법적 보호종 수달, 담비, 삵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수달은 한탄강 본류를 주서식지로 이용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한탄강은 양안의 주상절리대와 기암괴석의 풍경이 아름답고 강물의 흐름이 매우 빨라 여름철에는 젊은이들의 래프팅 장소로 유명하고 겨울철에는 강추위로 강물이 얼어붙어 얼음 위를 걸어볼 기회가 주어지는 곳이다. 겨울이라고 하여도 쉽사리 얼지는 않는다. 하물며 강물의 흐름이 빠른 한탄강이랴. 하지만 철원지역은 겨울철 기온이 매우 낮아 한탄강마저 얼어붙는다. 한탄강이 얼어도 얇게 어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걸어 다녀도 끄덕하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얼기 때문에 이러한 이점을 활용한 한탄강 얼음트레킹이라는 생소한 체험을 할 수 있다.
2018년 한탄강 얼음축제는 1월 20일(토) ~ 1월 29일(일)까지 9일간 열릴 예정이다. 1월의 가장 추운 기간에 열리기는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기온이 올라가 얼음이 두껍게 열리지 않으면 얼음 위를 걷는 트레킹은 한탄강 얼음트레킹의 최고 별미라고 할 수 있는 곳이며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송대소의 트레킹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트레킹은 가능하고 또한 고석정에서 순담계곡에 이르는 약 1km 정도의 물윗길(부교)을 설치하여 얼음트레킹은 물론 일부 구간이나마 4계절 한탄강 물 위를 걷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철원의 최고 관광명소가 되었다.
한탄강 고석정과 임꺽정 바위.
임꺽정은 조선 중기의 의적(義賊)으로 16세기 중반 몰락농민과 백정·천인들을 규합하여 지배층의 수탈정치에 저항, 정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홍길동(洪吉童)·장길산(張吉山)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적으로 일컬어진다. 일명 임거정(林巨正)·임거질정(林居叱正).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 신분으로 태어나 황해도에서 생활했다. 뜻을 같이하는 비슷한 처지의 농민 수십 명과 그 가족으로 집단을 이루어 황해도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도적활동을 시작했다. 날쌔고 용맹스러우며 지혜로웠던 그는 1559년경 황해도·경기도·평안도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이 지역의 관청이나 양반·토호의 집을 습격, 이들이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인 재물을 빼앗았다. 또한 서울·평양 간 도로와 그밖의 주요교통로를 장악하여 정부가 농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토지세·공물·진상물 등을 탈취했다. 이와 함께 관군의 방비와 토벌의 허점을 교묘히 찌르며 세를 확장하면서, 빼앗은 재물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주어 의적으로서의 성가를 높이고 이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정부 지배층이 여러 차례 관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려 했으나, 이를 번번이 물리치고 1559년에는 개성부 포도관 이억근(李億根)마저 잡아죽였다. 1560년 가을에는 봉산·개성을 거점으로 서울까지 진출했으나, 같은 해 11월 참모인 서림(徐林)이 체포되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서림에게서 활동의 계획과 비밀을 알아내고 선전관 정수익(鄭受益)과 봉산·평산의 관군으로 하여금 토벌하도록 했으나 뛰어난 전투력과 농민·이서(吏胥)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 세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당시 이서와 농민의 도움은 임꺽정의 부대가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되어 출몰을 예측할 수 없어 잡을 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1561년에 들어 황해도, 경기도 북부, 평안도, 강원도 지역에 출몰하여 활동했으나 관군의 대대적인 토벌이 이어져 형인 가도치(加都致)가 체포되는 등 세력이 점차 위축되었다. 토포사 남치근(南致勤)이 이끄는 관군의 끈질긴 추격으로부터 도망하던 중 마침내 1562년 1월 서흥에서 부상을 입고 체포당해, 15일 만에 죽음을 당했다.
임꺽정의 의적활동은 연산군 이후 명종대에 이르기까지 조선 전체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의 일환이며 그 집약점이었다. 이 시기 농민의 저항은, 당시의 사관이 "도적이 되는 것은 도적질하기 좋아서가 아니라 배고픔과 추위가 절박해서 부득이 그렇게 된 것이다. 백성을 도적으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라고 기록한 바와 같이 사회경제적 모순이 격화됨에 따라서 지배층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임꺽정 집단의 치열하고 오랜 활동은 정부·지배층에게는 불안과 공포의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피지배층 일반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그에 대한 평가도 상반되어 지배층은 그를 흉악무도한 도적이라고 했고 민중들은 의적으로 영웅시했다. 그뒤 그에 관한 많은 설화가 민간에 유포되었고, 그의 행적이 소설로 그려지기도 했다.
한탄강 관광안내 지도▲
금학산 등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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