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사변이라고도 하며, 국제적으로는 한국 전쟁이라 불린다. 소련의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하여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하였다. 국군은 북한의 앞선 병력과 무기에 밀려 한 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후퇴하였다. 이어 미국 주도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열려 유엔군이 파병되었다. 유엔군의 9월 15일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다. 하지만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자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전투가 계속되었다. 3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명 피해가 약 450만 명에 달하고, 남한의 43%의 산업 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었다. 남북한은 휴전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전쟁은 3년 1개월간 계속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남한의 인명피해는 민간인 약 100만 명을 포함한 약 200만 명이며, 공산진영의 인명피해는 100만 명의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군인 전사자는 한국군이 22만 7,748명, 미군이 3만 3,629명, 기타 UN군이 3,194명이며, 중국인민지원군과 북한군의 정확한 전사자수는 아직까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전쟁기간중 한국은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휴전협정 제60조에 의거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대한민국과 UN 참전 16개국 그리고 북한과 중국 및 소련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이 개최되었다.
한국과 UN 참전국측은 UN 감시하에 남북한 토착인구비례에 의한 자유총선거 실시와 그 결과에 따른 민주적인 통일정부수립을 주장한 데 반하여, 공산군 측은 오로지 주한 UN군의 철수만을 주장함으로써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같은 해 6월 회담은 결렬되었으며, 남북한은 항구적인 평화가 아닌 휴전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촉발된 6.25사변(한국전쟁)은 올해로 74주년을 맞이하였다. 아직 한국전쟁이 종료된 것이 아니고 휴전상태이다. 휴전협정이 채결되어 7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남북간의 갈등은 여전하다. 최근에는 우리 측의 탈북단체가 주동이 되어 풍선을 이용한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북측에서는 각종 오물을 담아 풍선에 띄워 보내는 웃지 못할 일을 자행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여행을 못 가는 나라가 없고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운영되는데 유일하게도 한나라 한민족인 북한지역에만은 여행의 자유가 없고 대화할 창구도 없다. 여행은 고사하고 한국전쟁으로 헤어지게 된 이산가족들의 상봉이나 전화통화나 편지왕래도 할 수 없는 최악의 비극이 이어지고 있는 사이가 되었다. 오늘 6.25 한국전쟁 74돌을 기념하여 무작정 걸어보았다. 오후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뙤약볕을 3시간 이상 걸어보았다. 이제는 젊음의 향기가 빠져나간 중늙은이의 몸에서 고약스러운 땀냄새만 풍기는듯하다. 한국전쟁에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국군과 국민들, 그리고 UN의 이름으로 타국의 전선에 파병되어 대한민국을 지켜준 장병들과 장렬하게 산화한 영령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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