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종주 9일 차 (덕유산 향적봉-백암봉-귀봉-못봉-갈미봉-신풍령-수령봉-삼봉산-소사재)▼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에서 편안한 잠자리가 좋았는가 봅니다. 찌뿌둥하던 몸이 하룻밤 사이에 거뜬하고 홀가분합니다. 백두대간 종주 길 2차 5일째.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 앞에서 동녘을 바라보니 2013년 08월 19일 여명이 밝아옵니다. 오늘은 좀 편안하게 짧은 거리를 걸어보면서 여유 있는 백두대간을 감상해 보려고 마음먹습니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신풍령을 거처 소사재까지만 간다면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서 넉넉하고 여유로운 백두대간 종주의 여정이 되리라고 여기면서 시원한 시간을 이용하기 위하여 동이 트기 전에 길을 나섭니다. (05:20)
미명에 돋보이는 주목.
동녘의 구름속에서 밝은 해가 떠오르고...
백암봉에 다다르고...
향적봉에서 중봉을 지나 백암봉에 도착하는 동안에 2013년 08월 19일의 찬란한 아침해가 떠올랐습니다.
노랑물봉숭아도 산객을 반겨주면서 힘과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백암봉 정상. 이제부터 다시금 백두대간의 종주 길로 접어들어 갑니다. 어제는 이곳 백암봉에서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그렇게도 멀어 보이더니만, 오늘은 미명의 자연을 감상하면서도 40여 분 만에 내려왔습니다.
백암봉에서부터 좌우로 참나무숲이 우거져 있고 등산로에도 수풀이 자라 있기는 하지만 그리 많지는 않아 이슬이 적어 옷을 많이 적시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뒤돌아본 백암봉 방향.
오늘 진행해야 하는 방향.
못봉 근처에서 바라본 귀봉 백암봉 중봉 덕유산 향적봉 방향의 지나온 능선입니다. 오른쪽 경사면에 희끗희끗한 모습은 덕유산 스키장의 슬로프입니다. 겨울에는 하얀 눈이 쌓여서 표가 나지 않지만 이처럼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에는 스키장 슬로프가 흉물스럽게 보이고 아름다운 덕유산의 경관에 오점으로 보입니다.
민둥산이 되어 버린 스키장 슬로프가 겨울 한 철을 위해서 저렇게 아름다운 덕유산을 망쳐놓고 있다니 조금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는데 여름철에도 푸른 수풀이 우거진 상태로는 보존이 안 되는지 정녕 대책이 없는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겨울에도 잘 견디는 잔디라도 심어서 여름철에도 초록의 덕유산 스키장 슬로프가 된다면 좋겠습니다만,
못봉에 도착합니다. 셀프카메라입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촬영해준 듯합니다. 하하하..
못봉에서 바라본 향적봉 능선.
참나무 가지가 기이하게 아래로 꺾여져 있는데 코끼리의 상아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참나무에서 붙어 자라는 귀한 노루궁둥이 버섯을 발견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어 인증사진을 먼저 촬영하고 버섯을 따야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 없이 귀한 노루궁둥이 버섯을 먼저 따버리고 말았습니다. 크기는 크게 자라지 않은 상태라서 주먹 만한데 무게로는 150g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 노루궁둥이 버섯을 갖고 신풍령휴게소에서 점심 한 끼와 맞바꿔 먹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비닐 주머니에 넣어 배낭에 매달고 갔습니다. 노루궁둥이버섯을 모르는 사람은 감히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루궁둥이버섯은 항암성분이 있어 버섯 중에서도 가장 고가로 거래되는 버섯입니다. 노루궁둥이버섯을 끓는 물에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고 여기에 항암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그 맛이 더하지요. 이것으로 어떤 점심과 맞바꾸어 먹을 수 있을까요. 노루궁둥이 버섯의 이미지를 촬영해야 하는데 그만 기회를 놓쳐서 예전에 삼척 응봉산 등산할 때에 채취한 노루궁둥이 버섯 이미지를 대신 아래에 첨부하겠습니다.
노루궁둥이버섯 자료 이미지▼.
대봉에서 덕유산 향적봉을 바라보는 파란마음.
갈미봉 표지석.
등산할 때에는 합죽선이 좋습니다. 날파리 떼를 쫓아주고 바람도 만들어주고요.
신풍령 정자입니다. 주변에서 도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라서 중장비와 공사인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신풍령휴게소인데 휴게소가 폐업된 상태입니다. 문은 굳게 잠겨있고 안을 들여다보니 주변에서 도로보수공사하는 인부들의 임시 숙소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이런 낭패가 있나요. 노루궁둥이버섯과 점심 한 끼와 맞바꾸어 먹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우선은 이곳에서 물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어쩌나~ 빈 휴게소 주변을 돌아보면서 물이 있는 곳이 없을까 찾는데 다행히도 공사인부들이 임시로 사용하고 있어서 화장실과 샤워실에서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 없는 샤워시설을 이용하여 샤워도 말끔히 하고...
그나저나 노루궁둥이 버섯을 계속 배낭에 매달고 다니면 망가져서 죽이 될 터인데, 생각다 못해 노루궁둥이 버섯을 제가 먹기로 하였습니다. 코펠에 물을 끓이고 노루궁둥이 버섯을 몇 개의 조각으로 낸 뒤 데쳐서 초장은 없으나 라면 수프는 있기에 라면 수프에 찍어서 먹어보니 그 맛이 또한 잊을 수 없는 노루궁둥이 버섯의 진미가 느껴집니다. 노루궁둥이 버섯과 라면 수프의 조화라니 참 내~
주인 없는 신풍령휴게소에서 무더위를 피하면서 점심도 해결하고 노루궁둥이버섯도 먹으면서 1시간 넘게 휴식을 취하다가 13시 30분에 다시금 백두대간 삼봉산 길로 들어섭니다.
신풍령을 지나 된세미재쯤 다다랐을 무렵에 전화기의 진동이 길게 울려댄다. 보통 사람이라면 몇 번 울려서 받지 않으면 끊지 마련인데 계속하여 울려댄다. 그러나 전화기를 꺼내려면 배낭을 벗어야 하는데 무거운 배낭을 한 번씩 벗고 다시 매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서 내버려 두었다. 꽤 오랫동안 진동이 울리다가 멈추었다. 다음에 배낭을 벗게 되면 그때에 확인해 보고 꼭 필요한 전화인가 아니면 스팸 전화인가를 알아보려고 하였다. 얼마를 그렇게 걷다가 휴식이 필요하여 배낭을 벗고 쉬면서 전화기를 꺼내어 수신 여부를 확인해 보니 서울의 등산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곧바로 전화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와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등산을 같이 하면서 동생같이 여기는 좋은 친구이다. 나의 백두대간 종주를 누구보다도 염려하고 말린 친구이다. 나의 체력을 알고 나의 형편을 잘 알고 있기에 가까운 산이나 열심히 다니면서 즐기라고 많이도 말렸던 친구인데, 나의 고집을 꺾을 사람이 없다. 결국, 나는 나의 단 한 번이 될 백두대간 종주 길을 결심했고 실행에 옮겼다. 비록 여러 차례로 나누어서 하려는 종주계획이기는 하지만...
지난 8월 초에 3박 4일 일정의 1차와 지금 2차로 지난 8월 15일 광복절 68주년인 날부터 4박 5일째가 된다. 다시금 얼마를 걸었을까, 다시금 전화기의 진동이 울린다. 틀림없이 아까 전화를 했던 친구라고 여기고 배낭을 벗어놓고 전화기를 꺼내어 받아보니 역시나 그 친구다. 무더운데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이다. 이곳 높은 산은 무덥지도 않고 별로 힘들지 안 하다고 거짓말을 하였지만 나의 몸은 땀으로 젖어있는 상태이고 그런 나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그 친구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제나 서울에 올라올 거냐고 묻는다. 아직 식량이 남아서 식량이 다 떨어질 때까지는 더 가야 한다고 말하니 식량이 다 떨어지면 식량을 보내 줄 터이니 전화하란다.
아내는 내가 산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고 전화도 한 번 하지 않는데 나를 염려해 주는 마음이 가족보다도 많다. 가족이라는 것. 특히 나는 가족에게 너무나 완벽한 존재였었나 생각해 본다. 완벽한 남편 그래서 산에 나가도 아무 일 없이 완벽하게 돌아올 그런 사람으로 생각하기에 전화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완벽한 남편이 되어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있구나 생각되기도 하여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다. 아무리 완벽한 남편이라고 해도 그렇지 혈기 왕성한 청년도 중년도 아닌 이제는 인생 칠십 고래회를 바라보는 노인네인데 깊은 산에서 짐승에게 물려서 죽거나 말거나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 존재가 되었구나 생각하니 서운하기가 이를 데 없다. 전화 한 통에 나의 마음속이 천국과 지옥 같은 찰나가 지나간다.
등산로에 장미를 닮은 구름버섯(운지버섯)이 저를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신풍령에서 삼봉산으로 가는 길이 험했습니다. 덕유산 삼봉산이라고 하는 표지석이 있는데 표지석이 산의 정상에 잇는 게 아니고 낮은 능선의 한편에 설치되어 있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봉우리 3개가 서로 가까이에 있어 3봉 산이고 그 중간 지점에 표지석을 세워놓았습니다.
삼봉산 암봉지대를 자날 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한쪽 그러니까 동쪽 소사재 방향으로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능선은 칼날 같은 능선으로 매우 위험한 구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삼봉산 끝자락에서 소사재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가파른 길이어서 한 발짝 한발짝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이곳 소사마을에는 사과밭이 종종 보이는데 아직 사과가 익지는 않았다고 하네요.
소사마을에 다 내려오니 배추밭에 배추가 물이 부족하여 잘 자라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소사마을로 내려와 올려다본 삼봉산.
소사마을 가게가 있는 집. 집 앞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고 평상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두대간 종주하는 이들이 많이 쉬어가는 길목이었습니다.
탑선슈퍼 가겟집 마당에 수많은 화분이 있는데 연밥이 달린 모습이 보입니다. 연밥이 귀엽게 들어앉아 있습니다.
삼봉산을 내려와 소사마을 가겟집에서 우선 시원한 음료부터 두 병을 사서 마셨습니다. 저녁을 사 먹을 수 있겠는가 물어보니 주변에서 일하는 공사장 인부들의 밥을 해주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기에 저도 한 사람의 인부로 생각하고 그들과 같이 한 끼를 먹게 해달라고 하였더니 그리하겠다고 하여 밥상을 따로 받았는데 청국장이 곁들여진 진수성찬과도 같은 밥상이었습니다. 실로 5일 만에 받아보는 한식 밥상인듯합니다. 직접 만들었다는 청국장의 맛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다른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곳 소사마을 가겟집 마당의 평상에서 잠시 밤을 새우다가 일찍 길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주인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주인은 정자나무 아래의 평상이나 지붕이 있는 또 다른 평상에서나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내일 일찍 출발할 것을 대비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합니다. 이곳 슈퍼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습니다.
산골이라서 버스가 많이 운행되지는 않기 때문에 버스가 지나가는 것은 볼 수 없었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오전과 오후 4시 이전에 서너 차례 운행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정을 단축하려고 한다면 내일 아침에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면 되지만 아직은 귀경할 생각이 없습니다. 내일과 모래까지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1주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경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귀경하는 날에는 등산을 될수록 오전 중에 마치거나 늦어도 오후 3시 이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어야 귀경할 수 있기에 지도를 펼쳐놓고 치밀하게 일정을 계산해 봅니다. 소사마을에서의 밤이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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