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여행

북한산 비봉과 신라진흥왕순수비

마 음 2024. 4.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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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능선의 향로봉이나 관봉 방향에서 문수봉 방향으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 보게 되는 우람한 바위봉을 볼 수 있는데 이름이 비봉이다. 바위봉우리 위에 반짝이는 비석 하나가 보이는 이게 1,500여 년 전에 신라의 진흥왕이 세운 순수비라는 것이다. 등산객들이 순수비가 있는 지점까지 오르려면 위의 이미지 아래쪽에 비봉감시초소가 있는 곳을 지나 바위봉의 중앙의 비석 아래 부분을 이용하여 오르거나 비봉을 왼쪽으로 우회하여 뒤쪽 방향에서 오를 수 있다.  
 
 
 

비봉을 우회하여 뒤쪽에서 오르는 시작 부분으로 이곳도 비봉 정상의 순수비가 있는 지점까지 오르기가 수월한 것은 아니다. 비봉 정상을 오르는 곳은 비봉의 동. 남. 서쪽의 세 방향이 가능하나 그래도 여기 동쪽 방향이 가장 수월한 곳이 아닐까 여겨진다. 동쪽 방향으로 한번 올라가 신라진흥왕순수비의 모습을 감상해 보자.
 
 
    

등산객이 서있는 지점으로 오르고 내린다. 아마도 중간지점이 아닐까 여겨진다.
 
 
 

비봉 아랫부분에서 순수비가 있는 정상까지는 추락의 위험요소가 많기는 하지만, 10분 내외면 정상에 오르게 된다.
 
 
 

신라진흥왕순수비가 있는 지점에 오르면 동서남북 사방이 확 트인 전경을 볼 수 있다.  날씨가 좋으면 서해바다가 보인다.
 
 
 

원본 복제비 이전의 유지비 모습.(2006년 5월 28일 촬영)
 
 
 

여러 방향에서 신라진흥왕순수비를 촬영해 보았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백제의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직접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순수비를 이곳에 세웠다. 이곳에는 비석이 있던 자리와 비석을 꽂았던 흠이 남아 있는데 비석이 세워진 곳이라 하여 북한산 비봉(碑峰)의 이름이 생겨났다.
 
비석을 세운 이래 1,200여 년 동안 잊혀 오다가 19세기 전반에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하였다. 비문에는 진흥왕이 북한산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나온 여러 고을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죄수들을 석방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그 후 비석이 마모되어 글자를 알아보기 어렵게 되고 비석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자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서 보존하고 있다. 순수비 자리에는 비석의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석을 세웠다가 2006년 10월 19일 순수비의 복제품을 만들어 원래의 자리에 설치하였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광개토왕비와 함께 삼국시대 역사 연구에 귀중한 금석문(돌이나 철로 된 재료에 새겨진 글)으로서 국보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