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로

은평구 관내 공원을 산책하다

마 음 2024. 7. 11. 15:05
728x90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 153-59 서울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입구 앞의 "은평평화공원"을 들러보기로 한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관내 "은평평화공원"에는 생활쓰레기 중에서 재활용이 가능한 물품을 모으는 "AI 그린 모아 모아" 무인 자동 기기가 설치되어 있어 생수병이나 빈캔 등 재활용품을 가져와 자동분리기에 넣으면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으로 안다. 오늘도 주부가 이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의 소녀상.

 

 

 

어린이 놀이시설도 갖추어져 있고.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1922.6.5 ~ 1950.9.22)

미국 해군 대위
서울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군복차림의 동상과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6·25 한국전쟁 첫 해인 1950년 9월 22일 서울수복작전 때 녹번리 전투에서 29세로 전사한 미국 해군 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를 기리는 조형물이다. 동상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한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의 외아들로 1922년 6월 5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미국 웨슬리언대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중 해군 소위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1947년 한국으로 돌아와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했다. 제대 후 하버드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 6·25 한국전쟁이 터지자 젊은 부인과 두 아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입대했다.

이때 그는 부모와 주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조국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는가?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공부를 해도 늦지 않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며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한 뒤 그는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 서울 탈환에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의 습격을 받아 전사했다.

그의 숭고한 사랑에 감명받은 미국 감리교인들은 아버지 윌리엄 얼 쇼가 공동창립한 대전감리교신학교 (현 목원대)에 '윌리엄 해밀턴 쇼 기념교회’를 건립했다. 그의 부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하버드대 박사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와서 이화여대 교수와 세브란스 병원 자원봉사자로 평생을 바쳤다. 아들과 며느리도 하버드대에서 한국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내한해 장학사업과 한·미 학술교류에 힘썼다.

은평평화공원 그의 동상 옆에는 기념비가 있다. 연세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 전 문교부 장관 등 60여 명이 ‘키가 크고 평양 말씨를 쓰던 벽안의 친구’를 위해 1956년 녹번 삼거리에 세웠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비석이다.

비석 받침대에는 제자이자 친구인 해군사관학교 2기생들의 헌사가 새겨져 있다. 그와 한국 친구들의 특별했던 우정은 국가 간 우방과 동맹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한국을 위해 목숨보다 더 큰 사랑을 바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매년 9월 22일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은평평화공원을 돌아나와 신사오거리 서울지하철 6호선 음암역 불광천으로 가본다.

 

 

 

신사오거리 음암역에서 본 불광천 래인보우교 방향.

 

 

 

음암역 불광천에서 구산역 방향으로 걸어오면 "연서역 터"라는 작은 비석을 하나 만나게 된다. 연서역은 조선의 중요 도로인 의주로의 첫 역이다. 서울에서 의주로 왕래하던 공무여행자에게 말과 숙식을 재공 하였다. 인조반정, 이괄의 난 당시 요충지로서 행군경로로 이용되었다.

 

이곳 연서역 터 비석 옆에 "인조유기비 어린이공원"이 있다.  

인조유기비 어린이공원.

 

 

 

어린이놀이시설이 있는 공원부지는 매우 작은 공간이나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인조유기비와 전각이 세워져 있다.

 

 

 

서울 인조별서 유기비는 조선 16대 완 인조가 즉위하기 전 이곳에 머물면서 평산부사 이귀, 장단부사 이서 등 몇몇 동지들과 반정을 모의하여 광해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그래서 인조반정비(仁祖反正碑)로도 불린다. 본래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의 별장이 있었다.


숙종 21년(1695) 7월에 인조의 증손자인 숙종이 기념비와 비각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으며 관리인을 두어 보전하게 했다. 임금이 행차할 때 임시로 머물던 주정소(晝停所) 역할도 하였다. 비석 앞면에 큰 글씨는 숙종이 썼으며, 뒷면의 글은 숙종이 직접 짓고 글씨는 이항이 썼다. 비의 전체 높이는 291cm이고, 몸체는 높이 168cm, 폭 72cm, 두께 26cm이다.


이 비석의 몸체는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다. 제일 아래에 십장생을 뜻하는 10각 화강석으로 된 이중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가 있는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몸체 위에는 화강암으로 된 지붕돌이 있다. 귀부는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선 초기에 새롭게 등장한 양식의 전통을 따랐으며, 지붕돌은 이무기 머리 모양 대신 간결한 한옥 양식으로 만들어 변화한 조선 후기 석비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는 조선 시대 석비 예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한 때 비각 일대에서 역촌동 도당굿을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중단된 상태이다.  

 

 

 

전각 입구에는 하마비도 있고.

 

 

 

인조유기비와 전각.

 

 

 

인조유기비 전면.

 

 

 

인조유기비 후면.

인조유기비 어린이공원을 둘러보고 구산동 "거북골 근린공원"으로 간다. 

 

 

거북골 근린공원은 구산역에서 서오릉 방향으로 가다가 구산사거리에서 구산동주민센터 방향으로 15분가량 진행하면 구산중학교 입구 안내표지판이 있는데 이곳에서 작은 도로를 따라서 오르면 구산중학교 정문을 만나게 된다.

 

 

 

구산중학교 방향 왼쪽으로 진입.

 

 

 

거북골 근린공원 입구.

 

 

 

거북골 근리공원은 봉산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동산이다.

 

 

 

거북골 근린공원에는 황톳길이 많은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맨발로 갇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된다. 좋은 일이여!

 

 

 

필자도 잠시 운동기구에 올라 운동을 즐겨본다.   

 

 

 

거북골 근린공원을 지나 "자월어린이공원"으로 간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로25길 11-8  자월어린이공원은 길마어린이공원과 함께 필자가 거주하는 곳에서 매우 가까이에 있는 공원이다. 길마어린이 공원은 앞에 있고 좌월어린이공원은 뒤에 있고, 그러나 아직은 어린이공원에서 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한번 둘러보는 것이지.

 

 

 

좌월어린이공원 풍경.

 

 

 

서울특별시 은평구 갈현로41길 3 갈현제1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갈곡리 어린이공원"이다.

 

 

 

갈현제1동 주민센터 옆의 갈곡리 어린이공원에는 작은 공연시설도 있는 공원이다.

 

 

 

오늘 서울특별시 은평구 관내에 있는 공원 5곳을 산책하여 보았다. 날씨가 무더워 나무가 많은 시원한 그늘을 찾아가고 싶은 계절이다. 다음에도 다시 좋은 공원을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