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고향역 황등역 익산역

마 음 2024. 11. 10. 16:02
728x90

 

「고향역」 이야기
한국인의 애창곡 중의 하나인 가수 나훈아 님이 부른 고향역의 배경은 익산역이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임종수선생은 순창 출신으로서 중. 고등학교 시절 당시 삼기지서에서 근무하던 형과 함께 삼기면에 거주하면서 황등역에서 익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통학했었다. 그때 기찻길 옆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고향의 어머니가 생각나 눈물지은 날이 많았다. 그때의 추억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노래가 바로  우리가 부르고 있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시작하는 '고향역'이다. 국민애창곡 '고향역'이 탄생하는 과정은 1970년대 사회 문화상을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다. 산업화로 도시로의 인구이동이 심화되고 있던 상황에서 고향을 떠난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1972년 이후  코스모스 피는 계절이 오면 전국에서 '고향역'이 흘러나온다.

 

차창밖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황등역


고향역을 대변하는 익산역.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왔다. 고향을 등지고 상경하여 살고 있는 지도 어느새 반세기가 지났다. 고향의 부모님은 오래전에 작고하셔서 안 계시지만 두 형제와 사촌들이 고향에 살고 있어서 부모님의 묘소관리도 하고 있기에 가끔은 고향을 찾아가고는 하기 때문에 고향이라는 말이 마냥 낯선 이름은 아니다.  지난 한가위에 고향을 찾아 부모님과 선대 어르신들께 성묘도 못하였기에 오늘 고향에 내려오게 되었다. 예전의 기억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고향의 모습도 많이 변한듯하다. 고향의 들녘을 거닐던 어린 소년이 변하여 노인이 되었으니 산천인들 그대로 있으랴. 산천초목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
 
이 가을에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또한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나훈아 님의 「고향역」 이라는 노래다.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 역...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의 배경 무대가 된 역이 바로 익산역(실제로는 황등역)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익산역으로 부르지만 고향 역이라는 노래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이리역」으로 불렀고 저를 포함해 고향 사람들은 솜리역이라고도 많이 불렀다. 그것은 예전에는 이리라는 이름보다 솜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렀고 지금도 나이 든 사람들은 솜리라는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리역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부르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이리에 간다고 하는 것보다 솜리 간다고 하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였었다. 지금은 옛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하면서 행정명이 익산시로 바뀌었고 이리역도 익산역으로 바뀌었다. 익산역은 호남지역 교통의 중심지가 되는 역이다. 서울에서 광주- 목포로 가는 호남선과 순천- 여수로 가는 전라선의 갈림역이며, 군산과 옥구로 가는 군산 옥구선과 장항을 거처 천안으로 이어지는 장항선의 시발역이기도 하다.
 
「고향역」 작사 작곡에 얽힌 이야기에 나오는 삼기면은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고 삼기면에서 서울이나 군산, 목포, 순천 등지로 열차를 이용하려면 가까운 황등역으로 가야만 하였는데, 황등역으로 가는 길목에는 황등산이라는 돌산이 있는데 삼기면에 거주하는 학생들이 이리 시내에 있는 중,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황등역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을 하는데 삼기면에서도 좀 더 먼 거리에 있는 학생들은 4~5km를 새벽바람을 맞으며 넒은 들판을 걸어온 학생들은 마지막으로 가파른 돌산이었던 황등산 고개 넘기가 참으로 힘든 곳이었는데도 오직 학교에 늦지 않게 통학 열차 시간에 맞추기 위하여 진땀을 빼며 오르지 않으면 안 되는 산이 황등산이었고, 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넘으면 그 아래에 황등역이 있었다. 요즘 같은 가을철이면 황등역사 주변은 물론이고 황등역에서 콩나물시루 같은 통학 열차를 타고 이리역(현 익산역)으로 가는 철로 주변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익산시 삼기면에서 통학 열차를 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닌 작곡가 임종수 씨는 1971년 황등역과 이리역(현 익산역)을 오가며 봤던 코스모스를 떠올리며 「고향역」을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향역의 배경 무대가 된 황등역에는 고향역을 기리는 자그마한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고 하는데. 이번에도 고향을 들르지는 못하고 고향역(황등역)을 달리는 차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돌아왔다.
 
황등산은 지금은 백 년이 넘게 돌을 많이 채취하여 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지가 되었고 황등역 역시 여객열차가 서지 않은 간이역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리역은 한때 화약을 싣고 있던 화물열차가 폭발하면서 이리역사가 무너져 날아가고 많은 인명피해와 주변 건물들이 파손되는 피해를 보았으나 현재는 현대식 건물로 새 단장 되어 익산역이 되었다. 당시 이리역 주변에 있던 삼남 극장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전 국회의원이자 코미디언이었던 이주일 님의 사회로 원로가수 하춘화 님의 지방순회공연 쇼가 진행 중이었는데 무거운 열차 파편들이 삼남 극장 지붕을 덮쳐 무너지면서 혼비백산 아수라장이 된 암흑 속에서도 이주일 님이 하춘화 님을 찾아 등에 업고 밖으로 내달렸다는 일화는 우리가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일화이다. 당시 필자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때였었다.
 
고향역 - 나훈아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