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275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인왕산 서쪽 자락 독립문역 사거리, 서울역에서 구파발로 가는 통일로 왼편에 독립공원이 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건축물이 독립문(獨立門)이다. 남동쪽 상단에는 ‘독립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새겼고, 북서쪽 상단에는 한자로 새겼다. 좌우에는 네 개의 괘 위치가 상하로 뒤바뀐 태극기 문양이, 아래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이화(李花, 자두꽃) 문장이 방패 모양으로 박혔다.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1821)이 세운 파리 개선문을 본떠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이 설계했다. 전쟁 영웅들이 개선식장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장식문은 고대 로마의 유습이다. 근대에 국가주의가 일어나면서 유럽 도시에는 이런 독립된 형태의 문들이 유행했다.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봉안된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서대문..

역사유적 2023.04.26

서오릉 창릉(예종과 안순왕후)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韓氏 ?~1498)의 릉이다. 예종은 세조의 둘째 이들로 태어나(1450) 세조2년(1457)에 세자가 되었고 세조13년(1468)에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오른지 13개월만에 20세로 경복궁에서 돌아가셨다(1469) 안순왕후는 우의정 청천부원군(淸川府院君) 한백륜(韓伯倫)의 딸로 예종 즉위년(1468)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연산군(燕山君)4년(1498)에 돌아가셨다.

역사유적 2023.04.19

창덕궁 산책

궁궐 밖에서 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궁궐 안에서 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요즘 관광지에서 이런 한복 차림의 관광객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은 외국인 여성들 혹은 내국인들도 이런 한복 차림으로 관광을 즐기면서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꼰대라고 불리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런 한복 차림에 커다란 커피 음료수를 들고 다니면서 관광을 즐기는 모습은 왠지 낯설어 보이던데 역시나 꼰대의 생각이겠지요. 관광은 말 그대로 보고 즐거우면 되는 것이니까? 창덕궁의 정전이 인정전. 창덕궁의 관람은 일반관람과 후원을 들어가 볼 수 있는 특별관람으로 나눈다. 특별관람은 정해진 시간에 안내자의 인솔로 이루어진다. 오른쪽 후원 특별 관람자들이 인솔자의 안내를 받으며 후원 관람을 대기하고 있고 이곳 바로 옆에서는..

역사유적 2022.09.29

서울 운현궁 산책

서울 운현궁의 관람은 남녀노소 무료입장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옆에 있는 운현궁 산책에 나섰다. 서울의 다른 궁궐은 여러 차례 관람을 하였었지만, 서울에서 반세기를 살면서도 운현궁을 관람하기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무리 작은 궁궐이라고 해도 명색이 궁궐인데 형광등에 비닐장판은 좀 어색해 보인다. 한지 장판을 설치하는데 그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서울 관광자로서의 성의가 좀 부족해 보인다. 그러나 기타 다른 부분에서는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운현궁은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 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 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 의지를 단행한 곳이기도 하다. 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써 고종이 즉위하기..

역사유적 2022.09.29

덕수궁 산책하기

덕수궁은 처음 월산대군의 집터였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선조의 임시거처로 사용되어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한 고종이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고종의 장수를 빈다는 의미에서 덕수궁(德壽宮)이라 다시 바꾸었다. 1897년(광무 1)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하여 정관헌, 돈덕전, 즉조당, 석어당, 경효전, 준명전, 흠문각, 함녕전, 석조전 등 많은 건물들을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이곳은 고종의 재위 말년의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되었던 장소로, 궁내에 서양식 건물이 여럿 지어진 것이 주목된다. 1963년 1월 18일에 사적 제124호로 지정되었다. 예전에는 정동 방향 법원건물이 있던 곳이나 시청..

역사유적 2022.09.28

창경궁 명정전 & 춘당지 산책하기

고목 백송 소나무 종류 중 하나로 하얀 껍질이 특징이다.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원래 고향은 중국 베이징 부근이며, 조선시대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은 것이 여기 적;ㅣ 퍼졌다. 서울 재동 백송(헌법재판소 내), 서울 조계사 백송, 고양 송포 백송, 예산 용궁리 백송, 이천 신대리 백송등이 문화재(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대온실의 소철 32년 만에 돌아온 창경궁 소철 이 소철은 창경원 시절부터 온실에 있었던 소철이다. 창경궁 복원 공사를 위해 1983년 8월 충남 금산 칠백의총으로 분양되었다가 1990년에 칠백의총 온실이 철거되면서 금산군 농업기술센터로 다시 분양되었다. 2015년 창경궁관리소 직원들이 수소문 ..

역사유적 2022.06.25

종묘 묘현례 세자빈의 첫 인사

종묘 연못에서▲ 묘현례. 2022 묘현례 창작극 세자빈의 첫인사 종묘 공원에 활짝 핀 장미▼ 오랜만에 종묘에 들러보았는데 종묘의 정전은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또한 내일(05월 18일)부터 오는 22일까지 묘현례(2022년 묘현례 창작극 세자빈의 첫인사) 행사를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어서 문안에 들어설 수 없어 아쉬움도 있었으나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면서 종묘를 둘러볼 수 있었다. 묘현례는 왕비나 세자빈이 왕실 혼례를 마친 후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의례로서 조선시대 종묘에서 행해지는 국가의례 중 왕실 여성이 참여하는 유일한 행사.

역사유적 2022.05.17

경복궁 향원정 경회루

북악산과 봉황 동산 인왕산(왼쪽부터 범바위- 인왕산 정상(치마바위)- 기차바위. 봉황 철문이 제거된 청와대 앞. 청와대 춘추관과 춘추문 경복궁 집옥재 경복궁 건청궁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경회루 불두화와 구중궁궐 가정의 달 5월의 두 번째 토요일을 맞이하여 잠시 인왕산을 산책하려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하차하여 먼저 경복궁 주변을 돌아보려고 들어가 보니 주말이어서 사람도 많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서 흙먼지가 너무도 많이 날린다. 미세먼지가 없다고 하여 인왕산 산책길에 나선 것인데 미세먼지 대신에 흙먼지가 날리고 꽃가루가 많이 날려서 산책하기에 좋은 여건이 아니다. 빨리 한 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가야 될 거 같아 서둘러 돌아보고 나왔다. 봄비가 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

역사유적 2022.05.14

경복궁 향원정

경복궁 향원정과 향원지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 香遠 : 향기가 멀리 간다)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인 서현정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향원지를 건너는 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 향원정은 1873년 고종이 건청궁을 지을 때 그 앞에 연못을 파서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이다.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취향교라 하였다. 취향교는 조선시대 연못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이다. 지금은 남쪽에서 나무다리를 건너서 섬에 가게 되어 있지만, 원래는 취향교가 북쪽에 있어 건청궁 쪽에서 건널 수 있었다. 이..

역사유적 2022.04.14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 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역사유적 2022.04.12